중국 IPO 자국은행 독식…힘빠진 월스트리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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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글로벌 투자은행(IB)이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블룸버그는 24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의 감원소식을 전했다. 일본을 뺀 아시아 지역에서 전체 인력의 25%를 줄인다는 것이다. 실적부진을 이유로 구조조정하는 인력은 75명 안팎이지만 올해 안에 뉴욕의 인력도 15%를 줄이겠다는 발표에 이은 소식이어서 업계엔 긴장감이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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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147년 역사의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자존심이 구겨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세계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기업공개(IPO)가 급감하기 시작하면서 타격을 받았다.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던 기업들이 속속 계획을 틀기 시작했다. 올 초엔 중국 경기가 침체될 우려에 전세계 증시마저 폭락하면서 IPO 시장은 급랭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투자은행들의 ‘먹을거리’에 해당하는 기업 인수·합병(M&A)과 투자(벤처·지분 투자)는 최근 1년 사이 19.6%나 줄어들었다. 북미(-28%)와 유럽(-14.9%), 아시아·태평양(-10.8%)까지 모든 시장이 위축됐다. 아시아권에선 유일하게 홍콩이 활기를 띠었다. 지난해 홍콩 시장은 상장을 통한 자금조달(335억 달러)이 뉴욕증권거래소를 처음으로 앞섰지만 투자은행들에겐 큰 도움이 되질 못했다.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은행들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올해 홍콩증시에서 이뤄진 10대 기업공개 중 7건이 중국 현지증권사들에 의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골드먼삭스는 지난해 전체 인원의 5%를 줄이겠다는 발표를 내놨다. 블룸버그는 “골드먼삭스가 올 들어 4차례 구조조정을 해 뉴욕사무소에서만 약 400명의 인력이 나갔다”고 보도했다. 이밖에 모건스탠리도 지난해 말 1200명을 줄였고, 스위스의 크레디트스위스 역시 2000명을 줄이고 임직원의 보너스를 줄이겠다는 자구안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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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냉풍이 불면서 투자은행업계 순위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금융시장 분석회사인 코얼리션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글로벌 투자은행 1~5위를 모두 차지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시장을 독식하게 된 것은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추락(3위→6위) 때문이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로 불릴 정도로 도이체방크를 둘러싼 상황은 좋지 않다. 불운을 불러온 것은 유럽중앙은행(ECB)의 마이너스 금리였다. 경기부양을 위해 ECB가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추자 수익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골드먼삭스 실적 악화로 구조조정
뉴욕 이어 아시아 인력 25% 감원
모건스탠리도 직원 1200명 해고

지난해 68억 유로에 달하는 적자를 낸 데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부실한 채권을 “안전하다”며 판 혐의로 최근 미국 법무부로부터 140억 달러(약 15조8000억원)에 달하는 벌금까지 맞았다. 불운이 이어지자 도이체방크는 오는 2020년까지 3만5000명에 달하는 인력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도이체방크는 이번 순위 하락에 대해 “상품과 지역·고객 기반을 조정하기 위해 택했던 전략적 결정들로 인해 상반기 매출에 충격이 있었지만 수익성은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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