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당신] 빚진 잠 ‘일시불’ 아닌 ‘할부’로 해소 … 몰아 자지 말고 나눠 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기사 이미지

적정 수면시간보다 적게 자면 수면부채가 쌓인다. 한번에 몰아서 자는 것보다 평소 취침 시각을 한두 시간 앞당기면 수면부채를 건강하게 갚을 수 있다.

잠 부족 땐 비만·당뇨병·치매 발병률 높아져
정상적인 수면은 깊은 잠 단계(비렘수면)와 얕은 잠 단계(렘수면)를 5~7회 반복한다. 깊은 잠은 근골격계의 피로를 풀고 기억력을 강화한다. 얕은 잠은 눈동자가 빨리 움직이며 꿈을 꾸는 단계인데, 이때 집중력·인지력을 높이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인다.

잠 모자라 생긴 ‘수면부채’ 갚는 법

그런데 이런 수면시간이 부족하면 수면부채가 쌓인다. 그럴 경우 빚에 따른 ‘이자’(부작용)를 내야 한다. 대표적인 게 집중력·기억력·인지력 저하다.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수면센터 신원철(대한수면학회 정책이사) 교수는 “정신이 산만해 병원을 찾는 아이 가운데 수면부채가 심하게 쌓인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수면부채는 뇌 건강을 위협한다. 우리 몸은 깨어 있는 동안 뇌가 활동하면서 베타아밀로이드 같은 찌꺼기를 배출한다. 그런데 잠을 잘 때 뇌를 순환하는 물(뇌척수액)이 뇌세포 사이사이로 들어가 이 찌꺼기를 씻어낸다. 신 교수는 “수면부채가 만성화되면 이 찌꺼기가 계속 쌓여 알츠하이머성 치매 발병률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면부채는 비만도 유발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하루에 7~8시간을 자는 청소년의 비만율은 8.8%인 반면 4시간 이하인 청소년의 비만율은 13.4%나 된다. 이는 잠을 잘 때 나오는 식욕억제호르몬(렙틴)이 줄고, 식욕을 자극하는 호르몬(그렐린)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수면부채는 성장호르몬 분비를 막아 어린이·청소년의 성장을 방해한다. 잠이 부족하면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혈당·혈압을 높이고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많이 분비한다. 또 당뇨병과 함께 협심증·심근경색 같은 각종 심혈관질환 발병률을 높인다. 신원철 교수는 “미국 보스턴대 의대 고트리브 박사가 성인(53~93세) 148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하루 7~8시간 자는 사람에 비해 5시간 이하로 자는 사람은 당뇨병 발병률이 2.5배, 관상동맥질환 발병률이 1.5배 높았다”고 설명했다.

적정 수면시간 알면 빚 청산에 유리
주중에 하루를 꼬박 새운 사람뿐 아니라 규칙적으로 자는 사람에게도 수면부채가 생길 수 있다. 신 교수는 “사람마다 적정 수면시간이 다른데 규칙적으로 자더라도 일정 시간을 채우지 못한다면 날마다 수면부채가 쌓이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적정 수면시간이 8시간인 사람이 매일 6시간만 잔다면 1주일에 14시간의 수면부채를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자신의 수면부채를 계산하려면 자신에게 맞는 수면시간부터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 수면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윌리엄 찰스 드멘트 박사가 개발한 ‘적정 수면시간 찾는 법’이 대표적인 자가진단법으로 통한다.

이 진단법에 따르면 평소 취침 시각에 맞춰 잠을 자되 잠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때 일어나는 과정을 3~4일간 반복하면 된다. 가령 매일같이 오후 11시에 자고 오전 6시에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났다면 알람을 끄고 오후 11시에 잠자리에 든다. 첫날엔 알람 없이도 오전 6시에 일어날 수 있다. 몸이 평소 아침 기상시각에 길들여져서다. 이때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잠에 빠졌다가 눈을 뜨면 또다시 잠을 청해 본다. 단, 이때 불은 절대 켜지 않아야 한다. 잠을 청해도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으면 기상 시각을 기록한다.

신 교수는 “마지막 3~4일째 자신이 잠을 잔 시간이 바로 내 몸에서 원하는 수면시간”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자신만의 수면시간을 잘 지키면 다음날 낮에 졸리지 않고 개운한 느낌이 든다는 것. 신촌세브란스병원 신경과 허경(대한수면학회 부회장) 교수는 “성인의 경우 적정 수면시간은 개인마다 4~10시간으로 다양하다”며 “일반적으로는 7~9시간이 평균 수준”이라고 말했다.

주말에 몰아 자면 수면 리듬 깨져
이미 발생한 수면부채는 어떻게 갚아야 할까.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주은연(대한수면연구학회 학술이사) 교수는 “밀린 잠을 주말에 왕창 몰아서 자는 건 오히려 주말 이후의 수면리듬을 깨뜨릴 수 있다”며 “수면부채가 생기면 주말까지 기다리지 말고 다음날부터 매일 조금씩 빚을 갚아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일시불’이 아닌 ‘할부’로 갚는 게 좋다는 얘기다. 가령 이번 주 수요일에 밤을 새웠다면 다음날(목요일) 점심시간에 20분에서 최대 1시간까지 낮잠을 잔다. 또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잠자리에 드는 시각을 평소보다 한두 시간 앞당기는 방식도 있다. 단, 낮잠은 오후 3시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 늦은 오후 낮잠은 그날 밤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