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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환자 100명 파브리병, 진단 어려워 치료 적기 놓치기 쉽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국내에 환자가 단 100명뿐인 희귀질환이 있다. 이름조차 생소한 ‘파브리병’이다. 세포에서 대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노폐물이 축적되면서 몸 전체에 문제를 일으킨다. 다행스러운 점은 다른 희귀질환과는 달리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진단이다. 인지도가 낮아 증상이 나타나도 모르고 지나치거나 다른 병으로 오인해 치료가 늦어지기 쉽다. 파브리병을 비롯한 희귀 심장질환 분야 전문가인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홍그루 교수를 만났다.

▲ 홍그루 교수는 “파브리병은 약으로 잘 관리하면 평생 문제 없이 살 수 있는 질환이다. 불치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송경빈

파브리병은 어떤 질환인가.

“우리 몸의 기본 단위인 세포를 만드는 재료가 있다. ‘당지질(phospholipid)’이란 물질이다. 원래는 세포벽을 만든 후 배출되는 게 정상이지만 드물게 배출을 담당하는 효소가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에 제 기능을 못한다. 배출되지 않은 찌꺼기는 세포에 그대로 남고, 세포는 점점 뚱뚱해진다(비후·肥厚). 뚱뚱해진 세포가 몸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이를 파브리병이라고 한다.”

어떤 증상이 나타나나.

“매우 다양하다. 콩팥 세포가 뚱뚱해지면 콩팥 질환이, 뇌혈관 세포가 뚱뚱해지면 뇌경색이 나타나는 식이다. 신경 세포는 물론 심장 세포까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손끝·발끝이 심하게 저리거나 땀이 전혀 나지 않는가 하면, 시력에 이상이 오거나 피부 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아무 원인 없이 콩팥 기능이 떨어지거나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기도 한다. 파브리병은 X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유전 질환이다. 증상은 남성에게 더 심하게 나타난다. 남성은 다양한 증상이 더 어린 나이에 나타나 빠르게 악화하는 반면, 여성은 한두 개 증상이 40~50대 이후에 나타나는 편이다.”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증상은 ‘비후성 심근병증’과 비슷한데.

“비후성 심근병증은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병이다. 두꺼워진 심장 근육은 심장 안에서 피가 흐름을 방해한다. 심하면 심장마비로 돌연사할 수 있다.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원인은 다양하다. 보통은 고혈압이나 대동맥 판막 질환이 원인이다. 때론 아무 이유 없이 나타나기도 한다. 주로 격렬한 운동을 하는 운동선수에게 발생한다. 실제 몇몇 축구선수가 경기 중 돌연사한 경우가 있었는데, 원인이 비후성 심근병증이었다. 파브리병에 의해서도 심장 근육이 두꺼워질 수 있다.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 100명 중 1명을 파브리병으로 추정한다.”

돌연사 위험이 더 큰 환자가 있나.

“심장 초음파 검사 결과 근육 두께가 3㎝ 이상인 환자, 평소 심실성 부정맥이 나타나는 환자, 가족 중 비후성 심근병증이 있는 사람은 돌연사 위험이 높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다만 파브리병은 심장에 나타나더라도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돌연사 위험이 높지 않은 편이다.”

두 질환을 헷갈리기 쉬울 것 같다.

“심장 전문의에게도 파브리병은 아주 어려운 질환이다.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비후성 심근병증은 500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나는 비교적 흔한 질환이지만 파브리병은 2만~4만 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나는 희귀질환이라 더욱 그렇다. 현재 국내 파브리병 환자는 100명 내외다. 일본은 800명에 달한다. 인구 수준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은 너무 적다. 제대로 진단되지 않은 환자가 아직 많다는 의미다. 비후성 심근병증은 심장 초음파 검사로 쉽게 알 수 있지만 파브리병은 몸 전체에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조기 진단이 어렵다.”

두 질환의 치료법이 같은가.

“두 질환은 같은 듯 다른 질환이다. 두 질환 모두 완치는 어렵지만 관리는 가능하다. 비후성 심근병증은 삽입형 제세동기를 몸속에 넣어 급사를 막는다. 부정맥이 온 순간 이를 뚫어주기 위해 자동으로 전기 충격을 주는 장치다. 수술로도 호전시킬 수 있다. 파브리병은 이보다 치료가 간단하다. 부족한 효소를 외부에서 보충하면 된다.별도의 치료제가 두 개나 출시돼 있다. 두 치료제 모두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주사제 대신 경구용 약이 개발돼 임상시험 중이다.”

파브리병 환자·보호자에게 한마디 하자면.

“파브리병은 불치병이 아니다. 고혈압·당뇨병과 마찬가지로 약만 잘 챙기면 평생 큰 문제없이 살 수 있다. 단, 조기에 발견해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치료가 어렵고, 이 기간 동안 나빠진 장기를 회복하기도 쉽지 않다. 환자·보호자뿐 아니라 일선 의사도 이 질환을 인지하고 있어야 적절히 진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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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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