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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부 1년간 쉰 날 딱 나흘” “한밤 퇴근, 잠든 딸 보면 찡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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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앞으로 ‘통(通)’자를 없앴으면 좋겠다. 검사를 그렇게 구분하는 건 안 맞는 것 같다.” 2009년 8월 검찰 인사가 발표된 직후 “수사 책임자에 기획통이 많은 것 같다”는 질문에 김준규(61) 당시 검찰총장은 이같이 답했다. 그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검사들의 이름 앞에는 특수통·기획통·공안통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검사 출신인 황교안 총리가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김수남(57) 검찰총장이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식이다. 검사들이 주로 맡았던 수사나 몸담았던 부서의 성격이 반영된 것인데 검사들끼리는 ‘전공’이라고 표현한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4년차 검사와 특수통이었던 베테랑 변호사, 조사부 여성 검사를 통해 검사들의 삶은 ‘전공’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를 들어봤다.

◆송치 사건에 치이는 형사부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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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순
천안지청 형사부 검사

김석순(39·대전지검 천안지청) 검사의 이력은 독특하다. 2005년 방송사 기자로 입사해 서울중앙지검에서 현대차 비자금 사건, 론스타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을 취재하다 검사가 됐다. 그는 “공익을 위해 진실을 밝혀내는 검사들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로스쿨(1기생) 출신인 김 검사는 올해 검사 4년차다. 첫발은 여느 초임 검사처럼 형사부에서 뗐다. 현재 조직폭력·마약범죄를 전담 중이다. 지방검찰청에서 강력부에 해당하는 업무다. 일과는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오후 10시를 훌쩍 넘기는 야근이 잦지만 오전 8시 반 출근엔 예외가 없다. 오전 9시에 부장 보고를 챙겨야 한다. 또 전날 밤 넘어온 10여 건의 경찰 송치 사건을 검토하고 수사관들에게 조사 일정과 영장 작성 등을 때맞춰 지시해야 한다. 이런 사건이 한 달에 200~300건이다.

3인이 말하는 검사의 애환

동시에 경찰 수사를 직접 지휘하고 스스로 사건을 발굴해 기획수사도 해야 한다. 김 검사는 “숙제만 해선 실적이 안 쌓인다. 실적을 쌓기 위해 형사부 초년 검사는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퍼즐처럼 짜맞춰 나가는 수사가 성격에 맞는 것 같다. 검사는 수사하는 사람이고, 이왕 수사하는 거라면 우리 사회에 복잡하게 얽힌 구조적인 거악(巨惡)을 척결하는 대형 특수수사를 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야근이 생활인 특수부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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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표
전 중앙지검 특수부 검사

김기표(44·연수원 30기) 변호사는 자타 공인 특수통 검사였다. 검사 3년차(2006년) 때 순천지청 형사부에서 특수수사를 담당했다. 성과를 인정받아 2011년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검사로 자리를 옮겼다. 김 변호사는 당시 부인에게 “내가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고 생각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가 그해 출근하지 않고 쉰 날은 1년 중 나흘에 불과했다. 그는 “지독한 야근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특수부 검사의 제1덕목”이라고 설명했다. 업무와 취침을 반복하던 탓에 민방위복을 입고 조사를 다닌 적도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한 번 볼 걸 두 번 보면 안 보이던 게 보인다. 그러니 집에 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부에서 묵묵히 밤을 새워 가며 미제 사건을 처리하는 성실함, 평범한 고소·고발 사건에서 숨어 있는 이면의 사건을 들춰내는 집요함과 관찰력이 특수부 검사의 자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면 “쟤 잘한다”는 세평이 퍼진다고 했다. 특수부에서는 스스로 사건을 찾아내는 게 숙명이다. 김 변호사는 “‘나 하나 구속해서 대한민국이 달라지는 게 뭐냐’는 피의자의 항변을 들을 때도 있지만 우리의 수사 결과가 모여 국가의 품격이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그게 특수부 검사의 프라이드다”고 덧붙였다.

◆꼼꼼함이 무기인 조사부 여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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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중앙지검 조사부 검사

특수부 검사가 큰 칼을 찬 검객이라면 조사부 검사는 치밀하고 정교한 저격수다. 주로 범죄금액이 5억원이 넘는 사기·횡령·배임 사건 등에서 금융계좌를 추적하고 복잡한 회계장부를 장기간에 걸쳐 꼼꼼히 따져야 할 때가 많다.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 수상한 자금 흐름도 정확히 조준해 내야 한다. 타 부서에 비해 여검사 비율이 높은 것도 이러한 업무 성격과 무관치 않다. 서울중앙지검에 있는 조사1, 2부에는 총 4명의 여검사가 있다. 조사2부의 장진영(37·여·연수원 36기) 검사는 “자금 흐름을 파악하는 과정에 재미를 느껴 큰 경제범죄를 다뤄 보고 싶어 이곳에 있게 됐다”고 했다.

이곳에서도 야근은 필수다. “초등학생 딸을 보러 서둘러 귀가하고 싶을 때가 많지만 캐비닛 안에 쌓인 사건 파일들이 발목을 잡는다”고 말했다. 검사 생활 10년째, ‘여검사’와 ‘아내·엄마’의 역할 고민이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장 검사는 “여검사들에게는 여전히 출산·육아가 어려운 문제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볼 때나 이제 초등학교 1학년밖에 안 된 아이가 너무 일찍 어른스러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러다가도 가끔 ‘엄마가 항상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보면 마음이 찡하다”고 했다.

윤호진·송승환·김선미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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