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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칼럼] 아쉬움 남긴 '일자리…'시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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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8년 전 연수차 반년간 영국에 머문 적이 있다. 그때 BBC 저녁뉴스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뉴스가 있었다. 그날 하루 일자리가 구체적으로 몇개 생기고 몇개가 사라져 총 몇자리가 늘거나 줄었다는 뉴스였다. 영국의 성년 실업자에게는 모두 실업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에 정확한 일자리 증감 통계가 매일 매일 파악된다.

당시 영국의 실업률은 13%로 국민의 최대 관심과 정책의 최우선이 새 일자리 창출이었다. 자연히 일자리를 만들 투자자는 왕 같은 존재였다. 중앙정부건 지자체건 좋은 투자 유치조건을 제시하는 서비스 경쟁이 있을 뿐 규제와 인허가로 투자자의 발목을 잡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우리나라도 경기침체와 외국투자 유치보다 해외로 투자유출이 커지는 투자 역조로 실업률, 특히 청년 실업률이 심각하게 늘고 있다. 그런데도 일자리 창출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은 이상할 정도로 낮다. 그런 의미에서 21일자부터 연재되고 있는 중앙일보의 기획시리즈 '일자리가 먼저다'는 매우 계몽적이고 의미있는 기획이다.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요컨대 기업의 투자의욕을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 외자도 들어오고 해외로 투자유출도 적어진다. 우리나라의 기업의욕.투자의욕을 저해하는 요소로는 과도한 규제.세금과 인프라 부족 등 정부적 요인, 전투적 노조, 고용과 세금으로 기업보국(報國)하겠다는 기업가정신의 퇴조 등이 꼽힌다.

그런데 '일자리가 먼저다'시리즈는 이 세 측면을 모두 짚고는 있으나 전투적인 노조와 노사 문제에 대한 정부 실책에 집중한 나머지 과도한 규제 등 정부 실패나 기업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상대적으로 소홀해 편향된 느낌을 주었다.

금속산업 노사의 임금 삭감 없는 주5일 근무제 합의는 파장이 큰 사건이었다. 정부의 주5일 근무제 법안에 대한 재계의 반대를 철회시켜 법 제정의 촉진제가 되고 있다. 이렇게 파장이 클 사안에 대한 중앙일보의 초기 보도는 너무 한가했다. 합의 소식을 첫 보도한 17일자 8면 톱 기사는 사실보도에 그쳤다.

그러나 경쟁지들은 1면 3단과 2면 톱으로 눈에 띄게 합의 사실을 보도하고 해설도 실었다. 다음날도 경쟁지들은 각각 1면 톱과 경제섹션 톱으로 그 파장을 속보로 크게 다뤘으나 중앙일보는 후속기사가 없었다.

대북송금 의혹 2차 공판은 피고인들의 엇갈린 주장이 관심의 포인트였다. 22일자 중앙일보는 공판 보도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으나 박지원-이기호, 박지원-정몽헌씨의 진술을 나열식으로 전달해 주요 쟁점에 대해 엇갈린 부분을 표로 정리한 경쟁지들에 비해 한눈에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8월부터 소득세를 경감한다는 24일자 중앙일보 보도도 경감액 관련 표가 너무 간단해 월급과 가족 수별로 줄어드는 내역을 자세히 표로 보여준 경쟁지에 비해 불친절해 보인다.

세대교체를 강조하며 집권당 사무총장이 되고 싶다는 의욕을 드러낸 노무현 대통령 측근 안희정씨의 '월간중앙'인터뷰가 타지에선 독립기사로 눈에 띄게 전재된 반면 막상 중앙일보는 21일자 5면 박스 기사에 파묻혀 실렸다.

그의 욕심이 여당 안에서 시빗거리가 돼 후속기사로 이어진 것을 보면 제목조차 없는 중앙일보의 자매잡지 기사 전재 방식을 어떻게 봐야 할까.

18일자 중앙일보는 사람면에 이애란씨가 탈북 여성으로 첫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1단짜리 단순 사실보도를 실었다. 같은 날 경쟁지 사람면은 李씨가 1997년 탈북해 호텔 룸메이드로 출발, 보험왕을 거쳐 석사학위를 따 '대한민국 드림'을 이루는 각고의 인간승리 과정을 감동적인 기사로 엮어냈다.

굿모닝시티로부터 4억2천만원을 받았다고 고백한 정대철 민주당 대표가 먼저 7억원을 요구했었다는 사실이 19일자 조선일보에 단독보도됐으나 중앙일보는 21일자 1면에 이 내용을 받으면서도 제목은 뽑지 않아 마치 기사가 빠진 것 같았다.

문제된 동아일보의 자금수수 정치인 실명 보도의 제보혐의자를 추적하는 22일자 기사에서도 타지들은 청와대 박범계 비서관을 실명으로 지목했으나 중앙일보는 '386 비서관'으로 표기, 궁금증을 남겼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