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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가면 꼭 사야할 게 위스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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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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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경제부 기자

‘아벨라워 아부나흐’라는 술이 있다. 아벨라워 브랜드의 술 중에서도 알코올도수 60도 안팎의 증류원액 그대로를 골라 담은 ‘캐스크 스트랭스’제품이다. 그런데 이 스코틀랜드제 위스키가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제주 특산품’으로 불린다. 최근까지 국내에서는 제주 중문면세점에서만 구입이 가능했던 술이라서다. 그것도 7만~8만원대의 경쟁력 있는 가격에 팔리다 보니 제주에 가면 꼭 사와야 할 제품으로 손꼽혔다.

이 얘기를 듣고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얼마나 살 만한 물건이 없었으면 물 건너온 양주가 특산품으로 꼽힐까. 동시에 올 상반기 국내 거주자가 해외에서 쓴 돈이 13조6079억원으로, 역대 상반기 기준 최고액이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상반기 해외여행을 다녀온 국민이 1063만여 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6.2% 늘면서 해외소비도 덩달아 늘었다. 해외 직접구매는 제외된 수치라 실제 해외소비 금액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해외여행객이 지난해보다 30~40% 증가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아마 적지 않은 돈을 쓰고 왔을 게다.

해외여행과 해외소비의 증가를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아깝고 아쉬울 뿐이다. 그 중 일부만 국내로 돌려도 ‘소비절벽’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금융연구원이 예상한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1.4%에 불과하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관광 소비가 5% 늘어나면 1조2000억원, 10% 증가하면 2조5000억원 이상의 내수 파급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해외여행객의 발길을 국내로 돌리게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지적하고 싶은 건 국내 여행에서 살 만한 물건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쇼핑은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아예 특정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르는 해외쇼핑족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집앞 대형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을거리나 전통 공예품들을 대충 늘어놓고, 오히려 더 비싼 가격에 팔고 있는 현재의 한국 관광지가 해외여행객을 유인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벨라워 아부나흐가 던지는 교훈은 명쾌하다. 국내에서 흔히 구할 수 없고, 가격경쟁력까지 갖춘 상품을 공급하면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소비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2, 제3의 아벨라워 아부나흐가 속속 등장해 예비 해외쇼핑족의 입에 오르내리길 기대해본다.

박진석 경제부 기자 kaila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