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여성 용변 엿본 30대 남성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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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근처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여성의 용변 장면을 몰래 엿본 남성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18일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성적 목적을 위한 공공장소 침입행위)로 기소된 A(35)씨에게 무죄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A씨는 2014년 7월 16일 오후 9시10분쯤 전주시 덕진구의 한 술집의 남녀 공용 화장실에 들어가는 B씨(26·여)를 뒤따라가 옆 칸에서 용변 보는 장면을 훔쳐봤다.

여성이 용변을 보는 칸의 바로 옆 칸으로 들어간 그는 칸막이 사이로 머리를 넣어 B씨의 용변 장면을 훔쳐보다 적발됐다.

검찰은 그해 9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특례법 제12조를 적용해 A씨를 기소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12조는 성적 욕망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중화장실에 침입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 법원은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문제의 화장실이 법이 정한 '공중화장실'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실조회 회신서에 첨부된 전주시 덕진구에 있는 공중화장실, 개방화장실, 이동화장실, 간이화장실 현황에는 이 사건의 화장실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해당 화장실은 술집 영업 시간에 맞춰 개방·폐쇄해 술집을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 손님을 위해 제공되는 점 등을 종합하면 결국 공중화장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덧붙였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르면 ‘공중화장실 등’은 공중화장실(공중이 이용하도록 제공하기 위해 국가, 지방자치단체, 법인 또는 개인이 설치하는 화장실), 개방화장실(공공기관의 시설물에 설치된 화장실 중 공중이 이용하도록 개방된 화장실 또는 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이 지정한 화장실), 이동화장실, 간이화장실, 유료화장실을 말한다.

이 때문에 법원이 지나치게 법 조문에 얽매여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법 제정 취지를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법대로라면 소규모 상가에 있는 술집 화장실에서 비슷한 범죄가 일어나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A씨 측은 1심에서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술집 부근 실외화장실은 공중화장실이 아니다”라며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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