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의열단의 열정까지 내 것으로 만든 공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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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스크린에서 가장 돋보인 배우가 있게 마련이다. 2016년의 배우는 아마 공유(37)가 아닐까. 올해는 공유에게 유독 ‘처음’인 일들이 많았다. ‘부산행’(7월 20일 개봉, 연상호 감독)으로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것도, ‘1000만 배우’가 된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그리고 ‘밀정’으로 처음 시대극에 도전했으며, 평소 함께 작품에 출연하고 싶었던 송강호와 첫 호흡을 맞췄다. 이뿐만이 아니다. ‘밀정’이 제7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와 제41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공유는 한 해에 세계적인 영화제 세 곳에서 자신의 출연작을 선보이게 됐다.

인터뷰 시작 전, “2016년은 ‘공유의 해’라고 하더라”고 축하 인사를 전하자 공유는 손사래부터 쳤다. 그러고 나서는 “요즘 자주 눈에 띄다 보니 좋은 수식어를 붙여 주는 것 같다”며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공유는 보통 1년에 한두 작품 정도를 내놓던, 호흡이 빠르지 않은 배우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남과 여’(2월 25일 개봉, 이윤기 감독)를 시작으로 ‘부산행’ ‘밀정’이 연달아 개봉했다. “데뷔 이후 시간을 이토록 알차게 보낸 적이 없었다”던 그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었다. “배우로서 원하는 그림대로 필모그래피를 채우고 싶은 마음에 그동안 앞만 보며 달렸다.

예전에는 겁이 많았다. 이제 욕심나는 작품이 있다면 장르를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내 틀을 서서히 깨뜨리고 싶다.” 특히 ‘밀정’은 공유가 “가장 욕심을 부린” 영화다. ‘시대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한 인물의 삶을 묵직하게 연기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님 작품에서 송강호 선배와 눈을 맞추고 대사를 주고받으며 호흡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굉장히 떨렸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가 배경인 시대극 ‘밀정’은, 의열단 리더 김우진과 일본 경찰 이정출이 극의 중심축이다. 항일과 친일의 경계선에서 서로를 이용하려 회유와 교란을 펼치는 이야기로, 두 인물 사이의 살벌한 긴장감이 이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힘인 셈. 공유는 송강호에게 밀리지 않고 팽팽한 연기 호흡을 보여 주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그가 찾은 방법은 이것이다. 먼저 김우진은 이정출 앞에서 간이라도 내줄 것처럼 실없이 농담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본래 김우진은 유연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냉철한 인물. 공유는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자유자재로 표정을 바꿔 가며 극과 극의 캐릭터를 표현했다.

그 다음으로 몸의 힘을 빼기 위해 노력했다. “선배들과 호흡을 맞춘 경험이 많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송강호 선배 앞에만 서면 자꾸 몸에 힘이 들어가더라. 그러다 보니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예 힘을 빼면 김 감독님이 원한 김우진의 모습까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힘을 줘야 할 부분에서는 존재감이 드러나도록 조절하며 연기해야 했다. 촬영 초반에는 정말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더라. ‘밀정’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공유가 신경 쓴 부분은 또 있다. 대의를 위해 ‘내일은 없다’라는 마음으로 살았던 의열단원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의열단원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멋지게 살았다더라. 짧고 굵은 그들의 삶이 슬프고 처연하지만, 스스로 더 당당하게 연기하려 노력했다. 나라를 위해 뜨겁게 살다 간 그분들의 열정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길 수 있도록 말이다.”

의열단 활동의 최전선에 선 김우진이 삶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듯, 공유 또한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을 겁내지 않는다. 자신의 부족한 점에 대해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스스로 보완점을 찾아내는 모습도 김우진과 닮았다. 공유는 “배우가 변화할 수 있는 곳은 촬영 현장밖에 없다”고 믿는다. 공유에게 촬영 현장은 ‘도전에 대한 자극을 주는 곳’이다.

“‘밀정’ 촬영 현장은 ‘송강호’라는 배우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영감을 얻고, 때로는 기죽어 움츠리게 되는 곳이었다. ‘나는 과연 어떤 배우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괴로운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촬영 현장에서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이다.

배우로서 계속 깨어 있고 꿈틀거릴 수 있게 동기 부여해 주는 곳이자, 게으른 내가 조금이라도 성실해질 수 있도록 채찍질해 주는 공간이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촬영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캐릭터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김우진이 되어 경성 거리에 서 있던 그때의 느낌은 굉장히 독특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밀정’은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나 마음의 빚 혹은 돈에 의해 사람 마음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인터뷰 말미에 공유에게 물었다.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무엇이냐”고. 공유는 주저 없이 “나를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이라 답했다.

“사회생활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아무런 편견이나 조건 없이 ‘나’라는 사람 자체를 인정해 주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본능적인 촉으로 ‘저 사람이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준다’고 느끼면, 바로 무장 해제되는 것 같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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