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추석 선물은…명절선물의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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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설 명절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에 보내는 대추와 버섯, 멸치 등으로 구성된 설 선물세트. [청와대사진기자단]

명절을 맞아 대통령이 사회 각계에 보내는 선물은 관심의 대상이다.

선물을 통해 국정 협력을 당부하고 사회적 배려 계층에는 격려와 정을 건네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명절 선물을 보면 당시 시대상은 물론 대통령의 스타일과 성격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올 추석을 앞두고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물을 둘러싼 청와대와 현 정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간 신경전이 불거지기도 했다.

조 의원은 지난 8일 ‘청와대가 국회의원 가운데 조응천 의원에게만 선물을 보내지 않았다’는 한 맻의 기사를 자신의 SNS에 올리면서 “선물도 못 받았는데 여러분이 후원금 좀 보태주이소”란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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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선물을 못 받았다며 트위터에 올린 글. [사진 조응천의원 트위터 캡처]

그러자 청와대에선 “시간 차가 있었던 것뿐인데 조 의원이 자신에게만 선물을 보내지 않은 것처럼 공론화했다”면서 조 의원에게 보내는 선물 배송을 취소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에 이번 추석이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전 마지막 명절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의 선물 세트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추석 선물 세트 가격은 6~7만원 대로, 만약 추석 전에 김영란법이 시행됐다면 5만원을 넘는 선물을 받을 수 없는 규정에 따라 김영란법 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박 대통령의 추석 선물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박 대통령은 이번 추석을 맞아 경북 경산 대추, 경기 여주 햅쌀, 전남 장흥 육포 등 우리 농축산물이 담긴 선물을 사회 각계 인사와 애국지사, 사회적 배려 계층에 선물했다.

지난해 추석 때에도 진도 흑미와 제주 찰기장, 여주 햅쌀 등 5가지 농산물을 선물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3년엔 장흥 육포, 대구 달성군 유가면 찹쌀, 가평 잣을 보냈고, 이듬해엔 강원도 횡성의 육포와 경남 밀양 대추, 경기 가평 잣 등 특산물을 보냈다.

매년 지역 안배를 고려한 선물 구성이 눈길을 끌었다. 박 대통령은 가정 위탁 보호 아동 등에겐 어린이 자율 학습형 전자책을 선물했고, 불교계 인사들에겐 육포 대신 다른 특산품을 담았다.

역대 대통령의 명절 선물에선 시대상과 대통령의 성격, 스타일 등이 반영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명절 선물로 주로 인삼을 보냈다. 당시 인삼을 담은 상자엔 봉황 문양이 새겨져 있어 박 전 대통령의 선물은 ‘봉황인삼’으로 불리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멸치 사랑은 유명하다. 김 전 대통령의 부친이 거제도에서 보내준 멸치를 주로 선물했는데 일명 ‘YS멸치’라고 불렸다.

야당시절엔 한해 3000상자, 여당 대표가 된 이후엔 5000여 상자씩 추석선물로 보냈다.

정치권에선 ‘YS멸치’를 받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에서 정치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향인 신안의 김을 주로 선물했고, 한과와 녹차가 주요 선물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 안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각 지역의 민속주를 골라 선물했다.

복분자주(2003년 추석), 국화주(2004년 설), 소곡주(2004년 추석), 이강주(2005년 설), 문배술(2005년 추석) 등 다양한 민속주가 선물 리스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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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추석을 맞아 각계 각층 주요 인사들에게 보낸 전통 한과와 민속주 세트. [중앙포토]

이명박 전 대통령도 국민 통합을 고려해 황태ㆍ대추ㆍ김ㆍ멸치ㆍ들기름 등 전국의 특산품을 골고루 담아 선물했다. 이 전 대통령은 불교계 인사들에겐 다기 세트를 선물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00만~200만원을 국회 의원들에게 명절 활동비 명목으로 지급했다. 주요포스트에 있는 인사들에겐 1000만원이 넘는 격려금을 줬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인삼을 즐겨 보냈다.

대통령의 명절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집 깊숙한 곳에 보관도 한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받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또 하나의 정치다.

곽재민ㆍ백수진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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