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취직 안 하냐 물으면 회사 차려 달라고 대답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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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공기업에 다니는 조모(38)씨는 추석을 생각하면 설레면서도 걱정된다. 5일간 쉴 수 있어 기대가 큰 반면 고향에 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미혼인 그는 지난 몇 년간 명절 때마다 친척들로부터 “결혼하라”는 잔소리에 시달렸다. 조씨는 “친척들의 걱정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SNS 빅데이터로 본 추석 속내
긍정 감성어 중 '연휴' 가장 많아
'명절 = 귀향' 점점 퇴색하는 중

추석을 대하는 한국인의 마음속은 어떤 모습일까. 본지가 소셜 빅데이터 전문기업인 메조미디어의 분석 도구 ‘티버즈(TIBUZZ)’를 활용해 한국인의 추석에 대한 ‘속내’를 조사한 결과 조씨처럼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복잡한 모습인 것으로 나타났다. 추석을 언급한 온라인 글(트위터·페이스북·인스타그램·블로그 등에서 작성된 글)에 좋다·즐겁다·감사하다·행복하다 등 긍정적 감성어가 함께 쓰인 경우는 63%였다. 싫다·고민이다·힘들다·걱정이다 등 부정적 감성어가 쓰인 경우는 37%였다. 지난 6월부터 지난 4일까지 추석·한가위·명절이 포함된 온라인 글 20만5709건을 분석한 결과다. 메조미디어 이수진 분석가는 “긴 연휴고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긍정적 글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부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긍정의 글에는 연휴와 관련한 내용이 많았다. ‘결혼 전엔 명절이 되면 큰집에 가 음식 한다고 기름 냄새 절었는데 결혼 후엔 반전. 올해는 시부모님과 다 같이 가족여행. 난 복 받은 며느리’(인스타그램, 8월 16일), ‘추석!!! 놀 생각밖에 안 하는…. 벌써부터 행복하네’(인스타그램, 8월 9일) 등이다. 이는 지난해 추석 기간(9월 25~29일)의 온라인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긍정적 감성어가 들어간 글 3만3993건에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연휴’(3863건)였다. 영화(1698건), 집(1628건), 친구(1608건), 음식(1020건) 등이 뒤를 이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추석은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선물 사들고 고향에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명절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명절의 의미는 퇴색되고 긴 휴일, 휴가 쪽으로 사회적 의미가 변하는 중이다”고 설명했다.

부정적 글로는 잔소리나 명절 준비와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추석에 집에 내려가면 또 시집가란 잔소리만 잔뜩 듣다 올 게 뻔해ㅜㅜ 세상 지겹’(인스타그램, 8월 22일), ‘추석 기차표 예매 새벽 5시부터 임했거늘 2만 번대 대기표 받았다. 명절 때마다 이 무슨 고생. 명절이 뭐라고’(인스타그램, 8월 17일), ‘추석 때 어른들 질문:취직 안 하니? 내 답변:취직하게 회사 차려줘요’(트위터, 8월 20일) 등의 내용이다.

지난해 추석 관련 부정적 글 1만2666건에도 스트레스(2102건), 잔소리(991건), 친척(432건), 공부(372건), 결혼(260건), 명절 음식(212건) 등의 언급이 많았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정적 언급 내용은 대체로 20~30대 청년층과 여성에게 해당하는 내용이다. ‘시월드’로 대변되는 여성의 명절 스트레스와 취업, 결혼 못한 청년층의 괴로움이 명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모처럼 가족끼리 만나는 명절에 이들 구성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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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과 관련된 연관어로는 ‘추석 선물’이 1만928건, ‘선물세트’가 4781건으로 1, 2위를 차지했다. ‘정을 주고받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일반화된 명절 선물 관행이 여전히 사람들의 큰 관심사라는 얘기다. 엄마(3186건), 가족(2961건), 용돈(2584건), 예매(2563건), 한복(2518건) 등의 단어에 대한 언급도 많았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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