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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명절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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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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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추석 연휴가 끝나는 9일 하오 고속도로는 한꺼번에 몰린 상경 차량들로 북새통 혼잡을 빚었다. 귀성 때와 마찬가지로 끼어들기·접촉사고가 잦았고 고속버스는 4∼5시간 연착했다’. 1987년 10월 10일자 본지 사회면에 실린 사진 설명이다. 그 위에는 차량이 줄지어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장면의 사진이 있고, 사진 제목은 ‘길에서 지새운 밤’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차량 운행시간이 대략 10시간 걸렸다는 얘기다. 이 차량 행렬은 본격적인 ‘마이카’ 붐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해 전국 자동차 등록대수는 약 140만 대였는데 5년 뒤엔 500만 대로 세 배 이상이 됐다. 그리고 다시 5년 뒤 자동차 1000만 대 시대가 왔다(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이 수치는 2140만 대다).

전통적으로 자동차 업계의 대목은 추석·설 연휴 직전이었다. 이에 맞춰 새 모델을 출시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광고에는 온 가족이 단란하게 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담겼다. 1980~90년대에 흔했던 풍경이다.

그 시절 ‘자가용’은 성공의 상징이었다. 그 안에 가족과 선물 꾸러미를 싣고 고향으로 가야 출세한 축에 들었다. 기차·버스를 타고 시골집으로 혼자 쓸쓸히 또는 가족과 함께 가는 것은 아직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학생들에게도 나름의 성패 기준이 있었다. 고교 때까지는 반장을 하는지, 전교 등수가 얼마나 되는지였다. 그 뒤에는 대학에 갔는지, 어떤 대학에 갔는지가 중요했다. 이에 따라 밥상에서 할아버지로부터의 거리나 할머니가 숨겨 둔 바나나의 임자가 정해지기 일쑤였다. 하필 설은 입시 때와 맞물려 있어 수험생은 늘 일가친척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는 존재가 됐다.

고향에 당당하게 가기 위해 돈을 모았다. 벼슬도 높였다. 학생에게는 할아버지·할머니·삼촌의 기대도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속했다. 집안의 골칫덩이로 친척을 마주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린, 산업화시대의 승자가 된 아들·손자가 부패 법조인·공무원·언론인으로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다. 성공하라고만 했지, 어떻게 살라고는 가르치지 않은 그 일가의 책임도 있다.

추석에 만나는 조카에게 직장·대학의 잣대를 들이밀지 말자. 어차피 명절 또는 집안 경조사 때나 보는 사이가 아닌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다면 조용히 지갑을 열면 된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외워 둔 ‘아재 개그’를 하나 던지자. 썰렁해도 그게 낫다.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