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출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중·고생들 사이에 「유서」까지 써놓고 집을 뛰쳐나가는 「가출병」이 크게 번지고 있다는 보도다.
입시를 앞둔 중3·고3학생들이 특히 많아 연 10∼20%씩 증가한다는 것이다(중앙일보 11일자 사회면) 경쟁사회의 중압 속에 부대끼는 소년·소녀들의 고통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란 걸 느끼게 된다.
독일 작가 「헤르만·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도 그런 소년들의 얘기를 다루고있다.
시골소년 「한스·기이벤라트」는 선생님이나 읍내 목사, 또 동급생들이 모두 인정하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는 주의 시험에 통과해서 신학교에 들어간 다음 튀빙겐 대학을 거쳐 목사가 되는 선망의 인생 도정을 밟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 학업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막상 신학교에서 그는 독서나 학업에 마음을 집중하기 어려워졌고, 기억력이 쇠퇴하여 선생들도 점점 싫어졌다.
염세관에 빠진 그는 결국 학교를 떠나 약해진 몸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기계공으로 적응하려했지만 결국 거기에도 실패하고 물에 빠져 자살하고 만다.
비극적인 종말이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인간적인 자유로운 삶 대신 기대의 중압 속에 침몰하는 어린 영혼의 아픔이 너무도 절실하다.
우리 사회에도 지금 「한스·기이벤라트」같은 청소년들은 얼마든지 있다.
자살까지 하는 불행은 피한다 해도 병적인 신경증세나 「가출병」, 문제소년화의 좌절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그건 「마크·트웨인」의 『「톰·소여」의 모험』같은 낭만을 준비하긴 어렵다.
「톰·소여」는 담배를 피우고 학교에도 가기 싫어 가출하여 큰어머니를 걱정시키는 악동이다.
그러나 그는 근본적으로 문명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모험을 즐기는 인간의 꿈을 펼친다. 용감하고 의협심이 풍부한 건강한 측면이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그런 만큼 거기엔 우리 사회 가출 소년들의 절망감이라든지, 타락위험은 오히려 없어 보인다.
일본 경시청의 미성년 가출 원인분석에 따르면 방랑벽을 포함한 「놀기 동경」이 가장 많고, 다음이 「이성교제」, 「학교가 싫어서」, 그리고 「가정불화」, 「전직 목적」의 순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중·고생의 「가출병」은 일본 청소년의 경향과도 차이가 있다.
학교를 싫어하게 된 「한스·기이벤라트」의 비극은 일본보다 우리 쪽이 많다. 그저 놀기를 좋아해 집을 떠났던 「톰·소여」에겐 오히려 건강한 미래가 있었다.
건강한 청소년을 기르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할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