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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중국의 ‘사드 압력’에 대응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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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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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관련해 대한민국에 대한 외교·매체 공세를 강화했다. 유엔에서 중국 대표들은 수주 동안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비난하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거부했다. 주요 20개국(G20) 항저우(杭州) 정상회의에서는 중국 매체와 외교부가 사드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여 한국 대표단을 놀라게 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사드를 박근혜 대통령이 ‘적절하게(properly)’ 다루지 않으면 한·중 관계에 전략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뭘까. 사드가 중국의 미사일 전력에 상당한 군사적 위협이 되기 때문은 아니다. 사드의 레이더는 북한을 겨냥하고 있다. 언젠가는 방향을 중국 쪽으로 바꿀 순 있지만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쉽게 사드를 우회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진짜 문제는 ‘전략적’이라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답은 상당히 명료하다. 베이징은 중국의 경제력·군사력이 증가할수록 아시아에서 미국의 양자 동맹 네트워크가 약화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나는 동북아의 미래에 대한 수차례 학술·공식 행사에서 중국 측 인사들이 한·미 동맹에는 미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이 사드를 전개하기로 결심한 것은 중국의 이러한 가정에 흠집을 낸다. 또한 베이징이 생각하는 것보다 한·미 동맹의 지정학적 뿌리가 깊다는 것을 증명한다. 중국 내부의 정치적 요인도 있다. 중국 국영 매체들은 한국이 사드 전개에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기대 속에 사드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광풍을 일으켰다. 정부를 향하는 네티즌의 분노에 고도로 민감한 중국 지도부가 압박을 철회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에 궁극적으로 중국이 사드 문제를 두고 한국에 계속 압력을 넣는 주된 이유는 베이징이 한국 사회 내부의 분열을 계속 목격하기 때문이다. 독일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내부 결집력이 가장 중요한 국력의 요소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손자(孫子)에서 마오쩌둥(毛澤東)에 이르는 중국 전략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을 분열시킴으로써 적을 무력화시켰다. 불행히도 사드 문제는 한국의 정체성, 북한·미국을 둘러싼 한국의 국내 분열과 얽히게 됐다. 사드를 이용해 박근혜 정부에 반대하고 좌파운동을 일으키려는 한국 언론인·전문가들의 히스테리적 이야기가 중국의 강경한 입장을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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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한국은 북한의 점증하는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 지난 7년 동안 북한은 세 차례의 핵실험과 72차례의 미사일 관련 실험을 했다. 북한 미사일 체제의 규모·이동성·위험성이 확대됐다. 중국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 한국 정부에는 해답이 있다. 사드를 중심으로 하는 억지·방어 능력 향상이다.

내 예상대로 박 대통령이 꿈쩍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중 관계의 긴장 상태가 좀 더 장기화될 것이다. 하지만 사드를 되돌릴 길이 없다는 것을 베이징이 수용하게 되면 보다 큰 틀의 지정학적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중국의 입장이 재조정될 것이다. 베이징의 목표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 체제를 강화시키는 게 아니라 약화시키는 것이다. 사드 배치가 진전된 다음에도 고집스럽게 서울에 압박을 가하는 것은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국내의 분노를 진정시킬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생산적인 한·중 관계가 한국·미국·중국 모두에 이익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국의 압력에 굴복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첫째, 평양의 미사일 저장량이 증가함에 따라 한국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저지하고 이겨낼 수 있은 능력이 약화될 것이다. 둘째, 베이징은 한국 국가 안보의 가장 중대한 사안들에 대해 서울로부터 주요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 다음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천안함 피격사건 같은 공격에 대해 북한이 아니라고 서울에 압력을 넣는 것? 향후 한국의 다른 무기 구매나 배치 계획에 대한 비난이나 간섭? 중국이 요구하는 통일의 조건을 서울이 수용하는 것? 셋째, 베이징은 북한이 위험한 도발을 멈추도록 중국이 압박을 가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지정학적 이익에는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넷째, 한·미 동맹의 장기적인 전망에 대한 미국과 아시아 국가의 평가가 비관적으로 바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정은은 서울은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는 반면 자신은 무슨 무기 체제이건 마음대로 개발할 수 있다고 국방위원회에서 자랑할 것이다.

청와대는 중국의 압박이 낳을 수 있는 여러 결과에 대해 검토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 지도자들과 만날 때 몇 번은 더 긴장감이 흐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원칙 있고 예측 가능하며 스스로를 방어할 준비가 됐다는 것을 입증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은 한반도와 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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