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의 질과 보험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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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의료보험의 전국민 실시 시기가 당초 계획보다 1∼2년 앞당겨질 것 같다. 여당이 최근에 제시한 정책 안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그러나 의보 확대를 무조건 받아들이기엔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다..
복지란 국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수혜돼야 하며 소득이나 계층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질병에 대한 진료의 기회도 균등하게 주어져야 함은 당연하다.
85년 말 현재 의료보험 혜택을 보는 인구는 전체의 43.3%에 불과하고 의료보호 대상자 8%를 합해도 국민의 절반 정도가 의료 면의 복지혜택에서 소외돼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 가운데 저소득층의 의료 수혜는 자력으로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따라서 이 같은 복지 수혜의 소외계층을 보험대상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개선 없이 이상론에만 치우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지난 81년부터 전국 6개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해온 지역의보 중에 보은·군위·홍천 등 3개 지역이 5년이 지난 금년에야 겨우 적자를 면했을 뿐 목포·옥구·강화 등 3개 지역에서는 치료기관에 지급해야 할 보험금마저 몇 달씩 밀릴 정도로 보험재정이 아직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것은 정부가 단돈 한 닢 내놓지 않고 수혜자 부담에만 의존하면 전국민 의료보험화가 어려움에 봉착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여당의 계획으로는 1년에 1천억원 정도의 재정지원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하나 의보 측에서는 82년 추계만으로도 최소한 3천억원이 매년 지원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어쨌든 정부가 의료보험 재정에 대한 지원은 않고 공짜로 개보험 생색만 내려 든다면 개보험은 성공하기 어렵다.
또 한가지 국민 개보험 실시에 앞서 확립해 두어야할 일은 부정수진의 방지나 적정청구의 유도 등 의료제도나 행정의 개선이다. 작년 한해만 해도 1백억원 이상의 부정수진과 착오지급을 적발, 환수했다고 한다.
피보험자들이 보험카드를 무자격자에게 빌러 준다든가 하는 일로 부정수진을 하게되면 결국 그 피해는 피보험자들 자신에게 돌아간다. 또한 진료기관에서도 부당청구·중복청구·심사과정에서의 산정착오 등으로 보험재정이 낭비되면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는 쪽은 재정적자로 진료비를 못 받게 되는 의료기관이라는 공동체의식의 제고도 절실하다.
의료공급자의 입장에서도 선결돼야할 일이 많다. 77년 의료보험제도가 시작된 이래 의약품과 의료 기기·기술은 질 또는 양적인 면에서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나 보험진료의 적용 기준은 발족당시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더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의약품이 나와있고 더 철저히 진단할 수 있는 새로운 기기가 개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있거나 비현실적· 비합리적 의료수가 책정 때문에 활용되지 못하거나 기피되고 있는 부당함도 있다. 보험진료의 새로운 적용기준을 의료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에 합리적으로 재조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개보험제도는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의보의 확대가 의료의 질을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전 국민이 고르게 의료보험의 혜택을 봐야 한다.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복지혜택의 필요성은 더 절실하다. 국민 개보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의보 현실을 보다 솔직히 적시하고 정부가 재정에 적극 개입해야 하며 제도를 재정비, 현실화하는 조치가 선행돼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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