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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새누리 여연 "SLBM 대응 위해 핵잠수함 보유" 제안

중앙일보

입력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여연)이 북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대한 대책으로 핵잠수함 보유를 주장했다. 여연은 이달 초 당내 의원들에게 배포한 비공개 보고서에서 지난달 24일 발사에 성공한 북한 SLBM의 대책 중 하나로 '대잠전 능력 강화'를 들었다. 그러면서 “북한 잠수함에 대한 감시는 현재까지 주로 정찰위성을 통해 이뤄졌으나 실시간 추적이 어려우므로 감시 및 추적·파괴를 위해서는 핵추진 잠수함 보유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핵잠수함 보유 주장은 그간 여권에서도 정진석 원내대표 등 정치인 개인 의견으로 제기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명시적으로 핵잠수함 보유 주장을 편 일은 없다. 핵 전력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를 미국 정부가 막을 수 있는 근거는 없지만 한국으로의 무기 판매에 제동을 건다든지 여러 수단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당내 관계자는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여연이 핵잠수함 보유 제안을 한 배경엔 청와대나 정부 측과 사전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여연 보고서는 당 지도부와 청와대의 정책 방향을 가리키는 역할을 해온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핵잠수함 외에도 보고서는 매우 강경한 대책들을 제시했다. ▶핵실험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인내한계선(red line) 선포 ▶북한이 핵실험 감행 시 미국의 전술핵무기 한국 재배치 ▶한·미·일간 북핵 위협 공동대응을 위한 협의체 구성 추진 ▶2012년 체결 직전 취소된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재추진 등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7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도발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3국이 더욱 긴밀히 공조, 강력히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한 것도 보고서가 제안한 ‘한·미·일 협의체 구성 추진’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여연이 강경 대응을 주문한 배경엔 “SLBM으로 한·미 동맹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여연의 정세분석이 깔려 있다. 보고서는 “북한이 탄도미사일 3기를 탑재할 수 있는 3000t급 잠수함을 건조 중”이라는 일본 언론의 보도를 인용하며, “북한-미국 본토 간 거리를 1000㎞로 가정할 때 3000t급 잠수함의 항속거리는 7000㎞ 이상이 돼 사거리가 2000㎞인 SLBM을 장착하면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론 돌아올 거리를 감안해 ‘항속거리의 2분의 1 + SLBM 사거리’로 공격 가능범위를 계산하지만, 북한은 회항을 감안하지 않고 공격하는 '전략적 무모함'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보고서는 이렇게 될 경우 북한이 ‘최소억제(minimum deterrence)’ 전력을 보유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했다. 최소억제는 상대방보다 더 큰 피해는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몇 개의 표적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상대의 행동을 억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 “‘시애틀에 대한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을 지원할 것인가’를 미국이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현재도 중국과의 핵전쟁 가능성, 대규모 북한 주민 살상 가능성, 주변국에 대한 낙진 피해 가능성 등으로 인해 미국의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핵우산’을 의미)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 북한의 본토 공격 위협까지 더해질 경우 확장억제 실행은 더울 어려워질 것이란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확장억제를 통해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SLBM 전력화로 한국의 ‘평화 결정권’ 회복에도 결정적 타격이 우려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처럼 쌀·비료 지원, 경제지원 등을 통해 평화를 얻겠다던 시절로의 회귀가 우려된다”고 했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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