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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삼례 나라수퍼 사건' 재심 첫 공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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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이 자백한 상황에서 실체적 진실 규명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7일 전주지법 2호 법정. 검·경의 부실 수사와 진범 논란을 빚은 '삼례 나라수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재심 첫 공판에서 박준영 변호사는 "무죄를 받기까지 17년이 걸린 상황에서 당사자들은 재판이 빨리 끝나기를 원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7월 8일 법원은 "경찰의 강압 수사 때문에 허위 자백했다"는 최대열(37)·임명선(37)·강인구(36)씨 등 3명의 주장을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올해 초 "내가 진범"이라는 이모(48)씨의 자백이 결정적 근거가 됐다. 최씨 등은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쯤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수퍼에 침입해 유모(당시 76세) 할머니의 입을 테이프로 막아 숨지게 하고 패물과 현금 254만원어치를 훔친 혐의로 기소돼 각각 징역 3∼6년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쳤다.

형사1부(부장 장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검찰 측은 "그간 진범 논란이 있었던 만큼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절차적 정의를 위해 증거 수집을 최대한 할 수 밖에 없다"며 증인 6명을 신청했다. 이에 박 변호사는 "무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돼 재심이 개시된 마당에 여기서 뭘 다시 해보겠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며 재판부에 검찰의 증거 신청을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제 국가보상이나 형사보상 절차 등이 펼쳐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인 신청을 두고 변호인단 안에선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증인 신청을 생략하려고 했지만 백선경 변호사는 "검찰 측 심문 사항 중 불분명하게 진술하거나 미심쩍은 부분들을 재심 재판에서 확실하게 밝혀내고 싶다"며 전 전주교도소 교화위원 박영희(66·여)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박씨는 16년 전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던 임명선씨를 돕기 위해 '삼례 3인조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인물이다. 백 변호사는 박씨의 친딸이다.

재판부는 다음달 7일을 특별기일로 정했다. 증인은 진범으로 지목된 조모(49)씨와 박영희씨 등 2명이 채택됐다. 최대열씨는 재판을 마친 뒤 "저희는 이걸로 끝내려고 했거든요. 재판이 10월 7일로 잡혔어요. 그때 완전히 끝냈으면 좋겠는데 또 미루면 힘들어질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가전제품 배송을 하는 그는 "재판 때문에 일을 계속 빠지니까 (재심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최근 실직했고 임씨는 식당에서 주방 일을 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이들의 곤궁한 처지를 제시하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닐 수 있다"며 조속한 선고를 강조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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