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없다" 한마디에…中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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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보유한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LHC)의 검출기 내부 모습. [사진 CERN]

중국 ‘과학굴기’의 상징인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 추진 계획이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의 말 한마디에 휘청거리고 있다.

중국이 4년 전부터 구상해온 입자가속기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입자가속기(LHC)보다 4배 큰 규모로 1400억위안(23조원)을 투입해 2050년 허베이(河北)성 친황다오(秦皇島)시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연구 시설이다.

7일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957년 노벨상 수상자인 양천닝(楊振寧) 칭화대 교수가 위챗에 올린 비판 글로 인해 중국의 입자가속기 계획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보도했다. 양천닝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1956년 패리티법칙에 관한 연구 업적으로 이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물리학 분야 석학이다.

지난 4일 양천닝은 메신저 위챗에 입자가속기 추진을 반대하는 기사를 게시하며 “이 시설은 다른 과학분야 예산까지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일 뿐 과학적·사회적 가치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해내지 못한 일을 중국이 할 수 있겠느냐는 논지의 글을 작성했다고 SCMP는 전했다. 실제로 미국의 입자가속기 계획은 2012년 예산 문제로 취소된 적 있다.

양천닝의 글은 바로 중국 언론 대부분에 실리며 뉴스 포털을 장악했고 이 의견에 지지하는 수만 개의 댓글이 달렸다.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입자가속기가 그만한 사회적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온라인 곳곳으로 확산됐다.

입자가속기 추진에 대한 의문이 커지자 5일 왕이팡(王貽芳) 고에너지물리학연구소장이 위챗에 “양천닝은 더 이상 과학연구 선두 주자가 아니므로 그의 글에는 실수가 많다”라며 반박 글을 올렸지만 논란을 잠재우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왕이팡은 중국 최초 브레이크스루 기초물리학상 수상자이자 현재 중국 입자가속기 계획을 이끌고 있는 중국 과학계의 톱스타다.

반 입자가속기 여론이 커진 것과 관련해 입자가속기 계획에 참여 중인 한 연구원은 “이미 사태는 벌어졌고 이를 되돌릴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무기력을 표했다. SCMP는 “양천닝이 올린 글로 중국 입자가속기의 미래를 알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입자가속기는 전자나 양성자 같은 하전입자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시켜 빅뱅을 재현하는 시설로 기초물리학의 상징과 같은 시설이지만 조 단위의 예산과 초고속 전자감지기 등 최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2012년 ‘신의 입자’ 힉스를 발견한 LHC는 전 세계 100여개 국 1만여명의 과학기술자가 수십 년간 건설 및 연구에 참여해 왔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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