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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암환자가 인간다운 삶까지 회복해야 치료 끝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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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의료원 영상의학과, 외과, 방사선종양학과, 종양혈액내과 의료진이 모여 암환자의 상태를 함께 점검하고 치료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임성필

암 치료 과정은 마라톤과 같다. 몸속에서 암 덩어리가 제거됐다고 끝이 아니다.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장기간 추가 치료나 관찰이 필요하다. 마음의 후유증도 길게 남는다. 선입견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생존을 넘어 삶의 질(質)이 개선돼야 비로소 치료는 끝난다. 경희의료원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암병원 건립에 도전하는 이유다.

경희의료원
후마니타스 암병원

암은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질환이다. 의술이 크게 발전했지만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는 여전히 암이다. 예전에는 암의 본질을 잘 몰랐다. 의사·연구자들은 오롯이 암 정복에 매달렸다. 그 결과 암의 원인과 특징이 속속 밝혀졌고, 암 종류에 따라 표준 치료법이 정립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생존율은 크게 늘어난 만큼 치료 후 삶의 만족감이 따라가지 못했다. 질병의 본질을 알수록 치료는 과감하고 신속하게 이뤄졌지만 개인의 삶과 행복은 우선순위에서 점차 밀려났다.

경희의료원이 신개념 암병원을 세운다. 병원 명칭은 ‘후마니타스(humanitas·인간다움)’. 인간애를 전면에 내세운 암병원이다. 경희대 임영진 의무부총장은 “후마니타스 암병원은 암으로 무너진 개인의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공간이다. 인간 중심의 의학을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고, 의사는 치료 성과를 추구하면서도 인간애를 실천하자는 게 설립 가치다.

암 치료 패러다임 확 바꿔

후마니타스를 어떻게 실현할까. 경희의료원은 정밀의학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동안 의학은 과학적 통계방법을 활용한 ‘평균의학’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암을 1~4기로 나누고 표준 지침을 참고해 치료했다. 그러나 동일한 치료를 받아도 효과는 천차만별이었다. 똑같은 암이라도 사람마다 발병 원인과 양상이 달라서다.

정밀의학은 이런 평균의 오류에 맞서는 학문이다. 유전적 특징, 대사물질, 단백질 발현뿐 아니라 환자의 직업과 생활환경처럼 질병과 관련 있는 개인정보를 모두 취합해 분석한 후 최적의 치료법을 도출하는 식이다.

경희의료원은 정밀의학을 실현하기 위해 경희대 의대를 중심으로 약대, 생명과학대, 응용과학대학 및 의과학연구원과 협력해 정밀의학 연구단을 꾸렸다. 연구단은 물론 유전체 분석 업체와 해외 선진 암센터의 각종 플랫폼을 총동원해 환자 정보를 분석해 낸다는 구상이다. 질병 관련 정보가 확보됐다면 치료법은 의료진들이 함께 찾는다.

해외 암센터와 공동연구

예전에는 치료법을 광범위하게 찾는 경향이 있었다. 예컨대 수술로 암 덩어리를 떼어낸 후에도 재발률을 낮추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하거나 항암제를 처방했다. 그 과정에서 환자는 치료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후마니타스 암병원은 진료과 간 협력진료 시스템으로 가장 정확한 치료법을 찾을 계획이다. 소화기내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핵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종양혈액내과, 외과 전문의가 모여 진단, 수술 및 보조요법, 치료 시기를 논의하면 맞춤형 치료법을 찾아 적용하기 수월하다. 경희의료원 암병원설립추진본부 이길연(외과 교수) 국장은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수술·치료는 재발률을 낮추고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우수 암병원, 연구소와도 협력한다. 최신 치료법이나 의술을 선도적으로 도입하고 연구 기반을 강화해 정밀진료의 모델을 완성해 나갈 예정이다. 경희의료원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암센터인 영국 ‘로열 마스덴’과 협약을 맺었다. 첫 성과는 직장암 분야에서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세계적 권위자인 로열 마스덴의 지나 브라운 교수를 경희대 의대 초빙교수로 임명했다. 개인별 특성에 따라 진단부터 치료까지 전 과정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공동연구에 활용할 방침이다. 지나 브라운 교수는 “경희의료원 의사들과 국제 직장암 협의체를 구성해 직장암 치료 국제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이라며 “후마니타스 암병원을 통해 한국의 직장암 환자도 개인별 정밀 암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후마니타스 암병원의 지향점은 치료를 넘어 개인의 삶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국내에선 아직 활성화하지 않은 치유 프로그램에 공을 들였다. 암환자의 심리와 치료 후 통증, 치료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암 때문에 달라진 외모와 어려워진 사회활동 때문에 겪게 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다른 병원에서 접하기 힘든 뷰티·쿠킹 수업, 인생·직업 상담, 요가·명상, 호흡법을 접목한 힐링댄스, 미술·음악·영화·웃음 치료, 동물매개치료 같은 각종 프로그램을 경희대는 물론 외부 전문기관과 협력해 완성시켰다. 이길연 국장은 “치유 프로그램은 암환자가 질병에 매몰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치료 의지를 높여주고 개인의 삶과 가족·일·꿈의 가치를 되찾는 데 병원이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후마니타스 암병원 27일 첫삽, 2018년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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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니타스 암병원은 치유·안정·회복을 공간 디자인의 포인트로 잡았다. 각 층은 환자의 두려움을 완화시키고 긍정적 심리를 유도하는 색으로 꾸며진다. 컬러세러피를 활용해 환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목적이다. 신규 환자와 치료 중인 암환자를 위한 공간에 특히 신경을 썼다. 1층에 마련되는 신환센터는 환자의 동선을 최소화한 게 특징이다. 첫 접수부터 상담, 진료 계획을 세우는 작업이 모두 여기에서 이뤄진다. 환자는 한 공간에 있고 필요하면 의사, 간호사, 코디네이터가 찾아가는 형태다. 2~3층은 진료실, 5층은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치유센터로 쓰인다. 암병동에도 환자 중심의 감성 디자인을 입힌다. 오랜 기간 병원에 거주해야 하는 환자와 가족을 고려해 동선의 편리함을 살렸다. 환자 안전에 최적화한 조명 시스템으로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공간 연출을 시도한다.

계획 9월 27일 착공, 2018년 5월 준공 목표

규모 지상 7층, 지하 2층, 연면적 약 1800평

구성 운동치료실, 신환센터, 진료실, 치유센터, 암연구소, 병동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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