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맞던 반지가 조여요"…그냥 두면 병 달고 삽니다 [건강한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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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위협하는 신체 비대증

신체 기관은 각각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며 건강 질서를 지킨다. 정상 두께를 벗어나 다른 영역을 침범하면 문제가 생기기 쉽다. 신체 기관 자체가 비대해져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원인에 따른 결과로 신체가 커지기도 한다. 말단비대증과 비후성 심근병증, 편도·아데노이드 비대증, 전립샘비대증이 대표적이다. 이들 질환은 당장 큰 문제가 없더라도 방치하면 심각한 건강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비대해질수록 괴로운 질환의 특징과 치료법을 살펴본다.

사지 말단 커지는 말단비대증

말단비대증은 신체와 장기가 커지는 만성질환이다. 주로 뇌하수체 종양에 따른 성장호르몬의 과도한 분비 때문에 발병한다. 뇌하수체는 전신의 호르몬을 조절하는 뇌 조직이다. 성장 발달부터 신체 대사, 임신과 출산, 수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리적 활동에 관여한다. 이러한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기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데 뇌하수체 종양이 생겨 성장호르몬이 지속해서 과잉 분비된다면 외형 변화를 피하기 어렵다. 성장기에는 체격이 거인처럼 몹시 커진다. 키가 2m 이상 자란다는 보고도 있다. 성장판이 닫힌 이후에는 신체의 말단 부위인 손, 발, 코, 턱 등이 비대해진다. 이마나 턱이 튀어나오면서 손발이 크고 두꺼워진다. 성대 변화로 목소리가 쉬거나 굵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쉽게 알아챌 수 없다는 점이다.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변화를 자각하기 어렵다. 이뿐만이 아니다. 말단비대증은 체내 장기와 대사 작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합병증 위험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단비대증은 당뇨를 동반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또한 심부전, 부정맥 등 심혈관 질환과 고혈압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처럼 말단비대증은 절대 가볍지 않은 질환이다. 하지만 모든 질환이 그렇듯 조기에 발견하면 다양한 치료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말단비대증 치료의 목표는 성장호르몬의 과도한 분비를 해소하는 것이다. 수술적 치료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뇌하수체 종양이 말단비대증의 원인으로 확인되면 수술적 절제를 일차적으로 고려한다. 뇌하수체 종양의 크기가 작을수록 완치율은 높아진다. 수술만으로 완치가 어려운 경우 약물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추가로 진행하기도 한다. 발 사이즈가 늘어 평소 신던 신발이 맞지 않고 손가락에 끼던 반지가 죈다면 말단비대증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급사 위험 큰 비후성 심근병증

비후성 심근병증은 좌심실 벽이 두꺼워지는 난치성 심장 질환이다. 고혈압처럼 좌심실 비대를 유발할 만한 증세 없이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상태를 말한다. 심장 수축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움직이면 숨이 차고 부정맥과 심부전이 발생할 수 있다. 혈액 통로가 좁아져 혈액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비후성 심근병증은 돌연사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젊은 나이 급성심장사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꼽힌다. 인구 500명당 한명꼴로 발생하지만,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주된 위험 요인은 돌연변이 유전자다. 심장 횡문근 관련 돌연변이 유전자가 비후성 심근병증 발생과 연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심장 질환 가족력이 있거나 젊은 나이에 급사한 가족이 있다면 정밀검사를 통해 질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료는 심근병증 형태에 따라 다르게 접근한다. 좌심실 유출로 협착이 있다면 심근절제술이나 두꺼워진 부위 심근을 괴사시키는 시술을 시행할 수 있다. 비후성 심근병증 관련 부정맥과 심부전이 발생했다면 약물로 치료한다. 급사를 예방하기 위해선 삽입형 제세동기 시술을 시행하는 게 효과적이다. 특히 운동 중이나 직후 흉통과 어지럼증, 두근거림이 나타나고 지나치게 숨이 차오른다면 즉시 병원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수면장애 부르는 편도·아데노이드 비대증

편도·아데노이드 비대증은 편도와 아데노이드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면서 호흡이 어려워지는 질환이다. 코막힘과 코골이 등을 유발하면서 특히 수면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 질환은 소아·청소년 시기에 흔히 발생한다. 편도선은 소아기에 급격히 발달하고 성인이 되면서 점차 퇴화하기 때문이다. 편도의 일종인 아데노이드는 7세 이후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소아·청소년 환자가 편도·아데노이드 비대증 전체 환자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이유다.

편도·아데노이드 비대증은 소아 수면무호흡증의 주요 원인이다. 반복적인 급성 세균 감염과 비강·부비강의 만성 염증이 편도·아데노이드를 비대하게 만든다. 수면장애가 주증상이기 때문에 아이가 잘 때 상태를 잘 살펴보는 것이 좋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성장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심할 경우 과잉행동과 주의력 장애, 공격성과 같은 행동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치료법은 아이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코골이가 심하지 않다면 경과를 지켜보거나 약물치료를 실시한다. 증상이 심한 경우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편도·아데노이드가 과도하게 클 땐 수술로 비대해진 부분을 절제해야 한다. ‘피타(PITA) 수술’이 대표적이다. 이는 다른 정상 조직에 상처를 주지 않고 돌출된 편도 조직만 제거하는 수술법이다. 기존 편도절제술보다 통증과 출혈, 합병증 위험이 적고 회복이 빠르다. 편도를 절제했더라도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편도 비대가 심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 수술을 결정하는 편이 이롭다.

중장년층 남성 괴롭히는 전립샘비대증

전립샘비대증은 중장년층 남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환이다. 전립샘이 커져 요도를 압박해 다양한 배뇨장애를 일으키는 게 특징이다. 남성호르몬과 노화, 생활 습관 등이 주요 원인이다. 우리나라 50대 남성의 절반, 80~90대 남성 대부분이 전립샘비대증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상적인 전립샘은 호두알 정도의 크기를 형성한다. 그런데 전립샘 크기가 비대해져 요도가 눌리면 소변의 흐름이 약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소변 줄기가 가늘어지면서 끊기고 배에 힘을 줘야만 소변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루 8번 이상 소변을 보는 빈뇨와 잔뇨감 등을 유발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전립샘 크기가 지나치게 커진 경우 급성 요폐, 요로 감염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심하면 신장 기능 저하까지 이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전립샘비대증은 증상이 나타났다고 해서 즉시 치료해야 하는 건 아니다. 견딜 만한 수준이라면 배뇨 습관과 식이요법 등으로 증상 개선을 기대해볼 수 있다. 다만 치료 타이밍은 빨리 확보할수록 좋다. 치료를 결정했을 땐 일차적으로 약물치료가 이뤄진다. 약물치료에도 호전되지 않을 경우 수술적 치료를 고려해 봐야 한다. 수술은 내시경을 이용한 전립샘절제술이 주로 시행된다. 나이가 들면 전립샘 비대로 인해 배뇨장애를 경험하기 쉽다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소변 길은 점점 좁아지고 소변을 배출하는 방광의 힘도 약해진다.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전립샘 상태를 꾸준히 점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움말=유희준 중앙대광명병원 신경외과 교수, 문인기 순천향대 부천병원 심장내과 교수, 이건희 강동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오진규 가천대 길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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