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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왜 그림 속에 들어갔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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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호 32면

저자: 윤철규 출판사: 마로니에북스 가격: 2만8000원

서양 그림 속의 글은 대부분 작가의 서명이다. 언제 누가 그렸다는 내용을 전한다. 하지만 동양 그림에는 서명 이외의 글이 더 있다. 대부분 시(詩)다. 그것도 보통 화가의 자작시가 아닌 유명 시인의 시다. 이렇게 그림과 시가 함께 있는 그림, 즉 동양화 하면 떠오르는 한문 문구가 잔뜩 들어간 그림을 ‘시의도(詩意圖)’라 한다. 책은 ‘시는 왜 그림 속에 들어갔고,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미술기자 출신으로 현재 인터넷 사이트 ‘스마트 K’를 운영하며 한국 미술을 소개하고 있는 윤철규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다. 전문가와 일반인의 눈높이를 오가며 조선시대 시의도의 세계를 파헤쳤다.


시의도는 중국에서 시작된 회화 양식이다. 원나라 때 문인화가 정착하면서 완전히 자리 잡았고,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이후에 전해져 18세기에 크게 유행했다.


시의도를 그린 선비 화가들은 머릿속에 글귀를 먼저 떠올린 뒤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 어울리는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시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결과물이 그림인 것이다. 그래서 시를 빼놓고 그림만 보면 반쪽짜리 감상이 되고 만다.


시의도가 유행한 데는 고아한 문인 취향에 대한 동경과 공감이 다분히 있었다. 또 시의도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문자 해독률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했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그림을 감상하고 즐길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했다.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18세기에 시의도가 꽃을 피운 이유다. 저자는 “당시 화가들이 시를 그림으로 그리면서 그림 세계는 한층 흥미로워졌고 깊어졌다. 시가 그 시대 그림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아무나 시의도를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시를 알아야 했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시각화할 능력이 뒷받침돼야 했다. 그래서 시의도에는 그린 이의 철학적 깊이와 소양이 드러난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시의도를 남긴 화가는 스무 명 안팎에 불과한 이유다. 시의도 작품 수가 가장 많은 화가는 풍속화의 대가 김홍도다. 확인된 것만 50점이 넘는다. 그 뒤를 직업화가 이방운과 문인화가 강세황이 잇는다.


저자는 “시의도는 양반 사대부들의 지성과 이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허위의식과 은밀한 취미까지도 엿보게 해준다”며 “동시에 당시 유행한 글, 이들이 즐겨 읊은 시를 알려주는 소중한 문학 사료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조선시대 시의도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쇠락의 길을 걷는다. 시가 대중화되면서 고급문화로서의 우아하고 고상한 성격이 시의도 안에서 희석됐기 때문이다. 또 1783년 신설된 규장각 직속 자비대령 화원에서 매분기 녹취재(綠取才ㆍ녹봉을 얻기 위한 시험)를 치러 시의 상투적인 시각화 작업을 반복한 것도 쇠락을 재촉했다.


시의도를 감상하는 묘미를 알려주는 것은 이 책의 미덕이다. 사례로 제시한 그림은 김홍도의 ‘세마도’다. 마부가 연못에서 말을 씻기고 있는 그림 속에 싯귀가 적혀있다. 당나라 한굉이 당나라 고조 이연의 손자 이익에게 준 시 ‘증이익(贈李翊)’ 중 두 구 ‘문외녹마춘세마 누전홍촉야영인(門外綠潭春洗馬 樓前紅燭夜迎人·봄이 되어 문밖 푸른 못에 말을 씻기고, 누대 앞 붉은 촛불 켜고 손님을 맞네)’이다. ‘세마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증이익’의 원문을 다 알아야 한다. 그림에 나와 있지 않은 시의 앞 부분 내용은 ‘왕손의 별장이라 주칠 마차 늘어섰지만 헛된 이름 바랄쏜가 이 한 몸 즐길 뿐’이다. 저자는 “김홍도는 지체 높은 사람에게서 그림 주문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굉의 시를 가져다 주문자인 귀인(貴人)의 지조를 슬쩍 찬양하려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반대로 ‘허명에 들떠 여기저기 다니기보다 이쪽이 낫지 않겠느냐’는 뜻을 담았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해석에 따라 그림의 의미가 확연히 달라진다.” 책에 실린 조선시대 시의도는 150여 점에 이른다. 시 풀이는 모두 한문학자 김규선 선문대 교수의 감수를 거쳤다. 시를 음미하며 그림을 읽어내는 호사를 누리고 또 누릴 수 있다.


글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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