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풀린 한국 수비, ‘기’부터 살려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기사 이미지

기성용

“(기)성용, 잠깐 이야기 좀 할까.”

기성용, 중국전 후반 체력 떨어져
중원 장악 못해 수비 도미노 붕괴
3분 만에 2골 내주며 위기 맞아
6일 시리아와 월드컵 예선 2차전
“협력 플레이로 수비 부담 나눠야”

2일 경기도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 울리 슈틸리케(62·독일) 축구대표팀 감독이 회복 훈련을 마치고 뒷정리 중이던 주장 기성용(27·스완지시티)을 불러세웠다. 대화 주제는 전날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중국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첫 경기(3-2승)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큰 몸동작까지 섞어 가며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기성용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감독의 말을 경청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중국전 막판 20분간 고전한 것에 대해 주장인 기성용과 대화하며 개선할 부분을 짚었다”면서 “3분 동안 두 골을 내준 건 대표팀 수준의 경기에서는 나오지 말아야 하는 실수다. 미얀마나 라오스를 상대로 패스가 끊어졌을 때와 중국이나 이란을 상대로 끊어졌을 때의 상황은 분명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과의 경기가 대표팀에 커다란 교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표팀은 중국과의 경기에서 3-0으로 앞서가던 후반 28분과 31분 잇따라 실점하며 한 골 차까지 쫓겼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집중력이 떨어져 실수가 나왔다”고 표현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후반 중반 이후 우리 선수들의 체력 저하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특히나 중앙 미드필더 기성용의 몸이 유난히 무거웠다. 기성용은 6월 중순부터 한 달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지난달 초 소속팀에 복귀한 이후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체력과 경기력 모두 정상이 아니다.

기사 이미지

경기 흐름을 조율하면서 1차 저지선 역할을 수행하는 기성용의 발이 느려지자 한국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빠른 역습 시도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경기 분위기도 장악하지 못했다. 이는 데이터로도 확인 가능하다. 기성용은 전반에 33차례의 패스를 시도하면서 팀 전술의 중심에 섰지만 후반에는 패스 횟수가 20회로 줄었다. 그가 주로 머문 지역도 전반엔 하프라인 부근이었는데 후반엔 페널티박스 부근으로 내려갔다.

중국전 분석을 담당한 팀트웰브의 김용신 분석관은 “패스를 주고받으려면 주변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 움직여야 한다”면서 “기성용은 전반엔 활발하게 이동하며 미드필드 지역을 폭넓게 커버했지만 후반에는 움직임을 줄이고 수비진 근처로 내려와 롱패스 위주로 플레이했다”고 말했다.

6일 말레이시아 세렘반의 파로이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시리아와의 최종예선 2차전 또한 체력과 집중력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경기 장소가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마카오로, 다시 말레이시아의 세렘반으로 바뀌어 선수단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시리아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5위로 객관적인 전력은 떨어지지만 오마르 크리빈(22·알다프라)을 앞세운 기습공격에 능한 팀이다. 앞서 치른 2차 예선에서 크리빈은 빠른 발과 정확한 슈팅을 앞세워 5골을 터뜨렸다. 슈틸리케호가 후반 중반 이후 체력이 떨어지는 중국전 패턴을 반복한다면 크리빈의 돌파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기성용의 컨디션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그의 역할 비중을 줄여 줄 필요가 있다”면서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후반에는 날개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가 중원으로 내려와 볼을 받아주는 협력 플레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