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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순천 ‘책방심다’ 표지 가리고 ‘블라인드 판매’ 가평 ‘북유럽’ 인디밴드 콘서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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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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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서점은 창가에 바 형태의 테이블을 만들고 곳곳에 의자와 소파를 배치했다. 김일수 대표(왼쪽)와 아들 영건씨가 자체 선정한 7월의 베스트셀러 1위 『표현의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속초=프리랜서 김성태]

지난달 30일 강원도 속초시 교동 동아서점. 젊은 남성이 책을 진열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서점을 운영하는 김영건(29) 팀장이다. 서점에 들어서자 벽면에 커다란 종이에 손글씨로 쓴 ‘동아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이 눈에 띄었다. 1위 『표현의 기술』, 2위 『채식주의자 』, 3위 『나에게 고맙다』 등 15권의 책 제목이 적혀 있다.

독자 사랑받는 지방 서점 비결

서점 안은 널찍하고 쾌적했다. 곳곳에 소파가 보이고 예쁜 나무의자들도 있다. ‘시골 서점’ 같지 않았다. 이날 서점에서 만난 고객 오성란(59·여)씨는 “오랜 단골인데 최근엔 서점 내부를 잘 꾸미고 문학 행사도 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호흡이 짧아진 디지털 시대. 전자책(e-book)까지 가세하면서 서점을 찾는 이들은 점점 줄고 있다. 자본력이 탄탄한 대형 서점들은 내부 리모델링을 통해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다. 서울 교보문고는 5만 년 역사를 자랑하는 초대형 카우리 소나무 독서 테이블, 300여 개의 좌석을 설치했다. 영풍문고는 유럽풍의 도서관 콘셉트를 도입했으며 서울 강남의 반디앤루니스도 서점 내 곳곳에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방의 서점들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서점들은 점점 사라져 간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1996년 5378개였던 전국의 서점은 20년 새 70% 줄어 지난해 말 기준 1559개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서도 자본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독특한 운영 방식으로 손님을 끄는 작은 서점이 늘고 있다. 속초의 동아서점 같은 곳이다. 56년 문을 연 동아서점은 3대가 60년째 운영해 오고 있다.

이 서점은 지난해 1월 매장을 세 배가량 확장·이전하는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고객을 끌기 위해 매장을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매출은 세 배 이상 늘었다. 현재 서점 내부 면적은 429㎡(약 130평). 내부에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창가에 바 형태의 테이블이 있고 중앙엔 테이블과 소파가 있다. 또 곳곳에 나무의자들이 있어 50명가량은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다. 김 팀장은 “서점을 확장·이전하면서 공간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어요. 사람들이 서점 공간을 어떻게 생각하게 만들까가 핵심이었다”고 했다.

매달 자체 베스트셀러 목록도 발표한다. 순위 발표에만 머무르지 않고 저자를 초청해 강연을 열기도 한다. 교보나 영풍 같은 대형 서점 체인에선 흔한 일이나 독자적인 지방 서점으로선 드문 일이다. 지난달 16일엔 7월 베스트셀러 1위였던 『표현의 기술』 저자 유시민씨를 초청해 ‘동네 서점 흥해라!’ 행사를 열었다. 유명 작가가 타계하면 그와 관련된 책을 모아 소개하는 기획전도 연다. 지난해 의학저술가 올리버 색스(1933~2015)가 사망했을 때 색스 코너를 마련했고 『앵무새 죽이기』의 저자 하퍼 리, 『방드르디, 야생의 삶』의 저자 미셸 투르니에가 타계했을 때도 기획전을 열었다.

책 분류 방식과 배치에도 나름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맛있는 책 한 그릇’ 이란 코너를 만들어 음식 관련 책을 배치하고 ‘내 삶의 동반자 반려동물 이야기’ 코너엔 동물 관련 책을 모아뒀다.

또 『사랑은 왜 아픈가』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그렇다면 정상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연달아 진열해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한다. 전혀 연관 없는 별개의 책이지만 제목을 연결하면 의미가 있는 하나의 문장이 되는 식의 배열이다.

동아서점은 56년 ‘동아문구사’로 시작했다. 김 팀장의 할아버지가 세웠다. 본격적으로 서점으로 자리 잡은 건 김 팀장의 아버지 김일수(64) 대표가 운영을 시작한 78년부터다. 130㎡(약 40평) 규모였다. 옛날 이야기가 나오자 아버지 김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는 “서점 황금기는 80년대 초~90년대 중반이었어요 . ‘슬램덩크’ ‘드래곤볼’이 나오는 날이면 서점 앞에 긴 줄이 생겼죠. 잡지는 한 달에 1만 권 이상이 팔렸습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고 2000년대 인터넷 서점이 본격화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김 대표는 서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판매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책은 순환이 늦어요.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서점은 출판사의 책을 위탁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원하는 A출판사에 책은 10권인데 위탁판매를 하면 30권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이 방식은 원하지 않는 책을 받기 때문에 팔리지 않은 책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고 했다.

동아서점은 독자들이 원하는 책으로 서가를 채우기 위해 지난해 1월 2만 권의 책을 반품했다. 그리고 도매상과 거래를 시작해 5만 권의 책을 새로 구입했다. 도매상과 거래할 경우 책을 받는 즉시 돈을 내야 해 자금 부담이 크다. 또 소량만 들여놓기 때문에 매일 책을 주문해야 한다. 김 대표는 “지금은 비용 부담이 있지만 이 같은 방식으로 책을 순환시키다 보면 언젠가는 독자들이 원하는 책으로만 서점을 꽉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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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전남 순천역 앞 골목에 문을 연 ‘책방심다’. 이 책방에선 나만의 그림책 만들기, 저자 초청 강연 등 지역민을 위한 행사가 수시로 열린다. [사진 각 서점]

독특함을 앞세운 서점은 속초 동아서점 외에도 전국 곳곳에 생기고 있다. 전남 순천역 앞 골목에는 ‘책방심다’란 작은 책방이 있다. 올해 2월 문을 연 이 책방엔 독립 출판물, 그림·여행 책 400여 권이 진열돼 있다. 책방에선 나만의 그림책 만들기, 저자 초청 강연, 수제맥주 만들기 등 지역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풀어주는 행사가 수시로 열린다.

책 표지를 보지 않고 책을 구매하는 ‘Blind Date with a Book’ 서가도 있다. 이 서가에는 제목을 알 수 없게 포장된 책들이 있다. 포장지 위에 적어 놓은 키워드 몇 개가 책 정보의 전부다. 주인 김주은(33·여)씨는 “책 광고와 표지를 보고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닌 진짜 좋은 책을 고르길 바라는 마음에 서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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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가평군 설악면 버스터미널 1층에 있는 ‘북유럽’에서 매달 열리는 책과 음악 콘서트. [사진 각 서점]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버스터미널 1층에도 ‘북유럽(Book You Love)’이란 책방이 있다. 이 책방 유리창에는 ‘雪岳(설악)에서는 書樂(서락)을…’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지난 5월 문을 연 이곳 책방엔 시·소설·동화 등 600여 권의 책이 채워져 있다. 이곳에선 유리창에 적힌 문구처럼 매달 인디 가수의 공연과 영화 상영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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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에 있는 헌책방 ‘소소책방’에서도 매달 콘서트가 열린다. [사진 각 서점]

경남 진주시에 최근 문을 연 ‘소소책방’은 헌책 전문 서점이다. 이곳에선 5000여 권의 헌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 매달 7~8회에 걸쳐 독서·글쓰기 모임이 열린다. 최근엔 유명 인사들도 작은 책방을 열고 있다. 방송인 노홍철(37)씨는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에 ‘철 든 책방’을 개점했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등의 카피로 알려진 최인아(55·여) 전 제일기획 부사장도 지난달 18일 서울 강남에 ‘최인아 책방’을 열었다.

[S BOX] 리스본 ‘버트란드’ 284년 역사, 미국 포틀랜드 ‘파월서점’은 책 400만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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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업 중인 서점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버트란드(Bertrand·사진)’다. 1732년 설립돼 284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서점 입구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는 기네스 월드 레코드 증명서가 걸려 있다. 서점 내부에는 284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옛 사진들이 걸려 있다. 서점에서는 중요한 문학 행사나 정치 토론회가 열리기도 한다. 버트란드서점은 현재 포르투갈 전역에 50개의 체인점이 있다.

세상에서 기장 아름다운 서점(영국 BBC 선정)은 네덜란드에 있는 ‘셀렉시즈 도미니카넌(Selexyz Dominicanen)’이다.

13세기 성당을 용도 변경해 만든 서점이다. 과거 성가대석이었던 자리에는 원목 테이블과 젊은 감각의 소파를 배치한 카페가, 성찬대는 신간 도서 진열대가 됐다. 최근엔 전시회와 음악회가 잇따라 진행되는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서점은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파월서점(Powell’s Books)’이다. 내부 규모는 6600㎡로 서가에 있는 책만 400만 권이 넘는다. 여러 개의 방으로 구분돼 서점이라기보단 도서관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서점답게 내부로 들어가기 전 놀이동산처럼 서점 지도를 나눠준다. 특이한 건 이 서점에는 새 책과 헌책이 서가에 섞여 있다는 점이다.

이 서점에서는 책을 사서 읽은 뒤 그 책을 다시 서점에 되팔 수 있다. 파월서점은 많게는 하루에 수천 권의 헌책을 사들인다.

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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