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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밀착보다 미·중 대립 때 더 위기…지금 사드가 그렇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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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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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전문가 31명에게 ‘주변국들의 관계 변화 중 어떤 상황이 한국에 외교적으로 가장 어려운가’라고 묻자 50%가 ‘미·중의 대립구도 격화’를 꼽았다. ‘한·중 갈등 속 북·중 관계 개선’(35.3%)보다 더 위협적이라고 봤다. 한 응답자는 “두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다 중간에 낀 한국을 노려보는 순간 어떻게 할 것이냐”며 “둘 사이가 나쁠수록 우리의 외교적 공간은 줄어든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인한 갈등의 본질도 미·중 대립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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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한국 외교의 위기는 이처럼 ‘낀 상황’에서 부각됐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판이 돌아갈 때 팽이가 더 빨리 돌아야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능동적 ‘팽이외교’로 돌파한 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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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을 앞두고 외교부 대미 라인은 대중 라인 못지않게 바쁘게 움직였다. 박 대통령의 방중 계획보다 방미 계획을 먼저 발표할 수 있도록 조율하기 위해서였다. 인민해방군을 사열하는 열병식 참석을 확정 짓기 직전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미 알래스카로 날아가 존 케리 국무장관을 만난다는 사실을 먼저 공개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중 관계를 중시해 전승절에 가긴 하지만 한·미 동맹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한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열병식까지 참석했지만 한·미 관계에 이상 신호는 발생하지 않았다.

미·중 사이 낀 외교, 어떻게 푸나
중국 전승절보다 방미 먼저 발표
‘중국 경사론’ 미국의 의심 풀어
중국의 남중국해 패소 판결 직전
사드배치 발표, 타이밍 부적절
“중국 보복해도 사드 배치를” 68%
“사드는 주권 문제, 원칙 지켜야”

반면 “미·중 모두를 잡는 것이 평상시엔 가능해 보이지만 위기가 생기면 둘 사이에서 당황하고 매우 고전한다”(박인휘 이화여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지적처럼 눈치를 보다 실기한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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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외교가 대표적이다. 2014년 방한한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AIIB 가입을 권유했다. 하지만 한국은 AIIB가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항하는 성격으로 판단해 8개월간 고민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 영국·프랑스·독일 같은 유럽 선진국들까지 대거 AIIB에 가입한 뒤에야 35번째로 들어가 실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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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운용의 묘’가 실종됐다는 평가다. 중국의 패소가 유력했던 국제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관련 판결(7월 12일) 직전에 사드 배치를 발표(7월 8일)하는 등 타이밍 조율마저 정교하지 못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중국은 자신들이 외교적으로 수세에 몰렸을 때 한국이 더블펀치를 날렸다고 인식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도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제적이라기보다는 수동적으로 뒤따라가는 외교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드라는 단일 이슈에 한·중 관계 전반이 흔들리는 이유에 대해 이규형 전 주러시아 대사는 “한국은 중국을 북핵 대응에 유리한 대로 이끌고 왔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가 사드 문제로 깨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한국이 중국에 너무 다가간다’고 생각했고 중국은 한국과 가까워지면서 ‘우리가 한·미·일 관계를 절묘하게 이간시키고 있다’고 인식했다”며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의 함정에 빠진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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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사드 배치 철회 주장에는 반대했다. ‘중국의 보복 조치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사드 배치 결정을 유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문가 31명 중 21명(67.7%)이 ‘그렇다’고 답했다. 한 외교 전문가는 “주권 사항임을 내세워 결정한 만큼 번복할 경우 ‘한국은 밀어붙이면 태도를 바꾼다’는 나쁜 학습효과를 줄 수 있고, 미국과의 신뢰도 깨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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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인권 싸워도 AIIB 손잡은 중국·노르웨이처럼 투트랙 외교를


◆설문·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들=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김성한 고려대 교수, 김영수 서강대 교수,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 남궁영 한국외대 교수,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박영호 강원대 초빙 교수,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 성원용 인천대 교수,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 총장·전 외교부 장관,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위성락 서울대 교수·전 주러 대사,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윤덕민 국립외교원장,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이규형 전 주러 대사,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이종화 고려대 교수,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 (가나다순, 이상 31명)

◆특별취재팀=최익재 팀장, 유지혜·박성훈·서재준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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