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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구 챙기기’ 여전한 미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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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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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산업부 기자

29일 정부 관료 인사 중 두 사람이 눈에 띈다. 대통령비서실 과학기술비서관에 임명된 김주한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전략본부장과 국립중앙과학관장에 임명된 양성광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이다. 신임 김 비서관은 과기전략본부장으로 있으면서 최근 3개월간 공석으로 있던 국립중앙과학관장을 겸임해 왔으니 결국 두 사람은 서로 자리를 맞바꾼 셈이다. 우연이지만 두 사람 모두 한양대를 졸업하고 기술고시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두 사람 다 훌륭한 관료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들이 그간 거쳐간 보직과 이를 둘러싼 ‘인사 생태계’를 보면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신임 김 비서관은 최근 3개월 동안 매주 월~목은 과천 미래부에서, 금요일에는 대전에서 지냈다. 지난 6월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장에서 미래부 과학기술전략본부장으로 발령이 났지만 과학관장 후임이 결정되지 않은 때문이었다. 후임으로 미래부 실·국장과 청와대 양 비서관이 거론됐지만 “개방형 공모제에 관료가 웬 말이냐”는 비판이 일자 정부가 인사를 미룬 것이다. 하지만 정부 인사권자는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시간이 흐르고 초대형 이슈가 정국을 뒤흔들자 물렸던 인사카드를 슬그머니 다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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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국립중앙과학관장은 인사가 꼬일 때 가는 자리가 아니다. 과학 대중화를 통해 과학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를 높여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자리다. 중앙과학관 관리뿐 아니라 전국의 5개 국립과학관도 같이 이끌어야 한다. 이 때문에 중앙과학관장은 개방형 공모제를 통해 ‘전문가’를 뽑게 돼 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 외국의 유명 과학관에는 과학자 출신 인사가 십 수년간 관장을 맡는 게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역대 과학관장들은 전부 미래부 관료 출신이었다. 게다가 이들 중 임기 2년을 모두 채운 이도 드물다.

올 3월 미래부는 대변인 자리를 ‘개방형 공모제’로 바꾸려 했다. 관료 대변인으로는 정부 정책을 제대로 홍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온다던 외부 홍보전문가는 함흥차사였다. 결국 7월 초 미래부 전파정책국장이 대변인으로 왔다. “그간 미래부 안팎에 어려운 일이 많아서 외부인이 대변인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공모에 시간도 많이 걸려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는 게 해명이었다.

진심 그럴까. 개방형 공모제 얘기가 나오자 미래부 안팎에서는 “요직을 외부에 내어주면 우리는 어디에 가느냐”는 원망이 들려왔다. 인사혁신처는 2014년 출범 후 인사혁신의 첫 카드로 개방형 공모제 확대를 선언했다. 현실은 거꾸로다. 공모제 고민의 결론은 결국 ‘내 식구 챙기기’였다. 이런 비판에 답을 해 준 한 관료의 말이 걸작이다. “개방형 공모제 대상에는 관료도 포함돼 있다.”

최준호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