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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일 근무가 좋은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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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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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지금은 믿기 힘들겠지만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됐던 2004년, 많은 이가 늘어난 휴일에 뭘 할지 고심했었다. 평생 엿새 일하고 하루 쉴까 말까 하던 일벌레 인생들이었다. 변변한 취미도 없고 놀 줄도 몰랐기에 이틀 휴일이 감당 안 됐던 거다.

근검이 미덕이던 시대. 정부 주도로 주 5일제 도입이 결정되자 반대가 쏟아졌다. 경제 5단체는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는 협박성 성명을 냈다. 여성단체들은 “생리휴가 무급화로 여성 근로자가 불리해진다”고, 중고생들은 “토요일 내내 학원에서 시달리게 됐다”고 불평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죄다 기우였다. 2003년 2.9%였던 경제성장률은 이후 4년간 3.9~5.5%를 유지했다. 여성이 피해 봤다거나 주 6일 수업제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주 5일제 도입 후 어언 12년. 로봇에, 인공지능에 갈수록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으면서 국내에서도 주 4일제 이야기가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론 늦은 편이다. 노르웨이·덴마크·네덜란드의 2014년 평균 노동시간은 주 28.9~33.9시간. 주 4일제가 일반화된 지 오래다.

심지어 주 4일제도 많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젠 랭킹 4위지만 2010~2013년 세계 최고의 거부였던 멕시코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기업가 입장에서 오랜 근무시간을 선호할 법한 그가 2년 전 범세계적인 주 3일 근무의 필요성을 역설해 관심을 끌었다. “늘어난 수명으로 70~75세까지 일하는 게 보통인 요즘에는 주 3일제가 타당하다”는 논리였다. 그래야 “오래 일하면서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가 주 3·4일제의 장점을 강조한다. 삶의 질이 나아지고 고용이 느는 게 다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여가와 휴식이 있어야 창의력이 발휘된다는 점이다. 이는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된 사실로 창조경제가 중요해질수록 명심해야 할 진리다.

최근 국내외에서 주 4일제 회사가 늘고 있다. 미국 유통업체인 아마존은 지난 27일 주 30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일자리 나누기 차원이긴 하지만 국내에서는 한화종합화학이 주 4일제를 시작하기로 지난 25일 결정했다. 이뿐만 아니라 에이스그룹, 김영사 등 주 4일제를 이미 도입한 업체도 꽤 있다. 여가와 휴식으로 머리가 말랑말랑해져야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는 걸 아는 기업들이다. 모름지기 “창조는 지능이 아닌 놀려는 본능에 의해 이뤄진다.”(스위스 심리학자 카를 융)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