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가을 전어처럼 당 살찌워 집나간 당원 돌아오게 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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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호 4 면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추미애(왼쪽에서 네번째) 신임 대표가 최고위원 당선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인호(영남)·전해철(경기·인천)·김영주(서울·제주) 최고위원, 추 대표, 김춘진(호남)·송현섭(노인 부문)·양향자(여성 부문)·심기준(충청·강원)·김병관(청년 부문) 최고위원. 오상민 기자

“기호 3번 추미애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27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선거관리위원장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당선자를 발표했다. 이 순간, 무대 위에 앉아 있던 추 신임 대표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TK(대구·경북) 출신으로 60년 야당사에서 첫 여성 당수가 된 그는 발표 전과 마찬가지로 굳은 표정으로 객석을 응시할 뿐이었다.


이날 전당대회에서 추 신임 대표는 54%의 득표율로 이종걸(23.9%)·김상곤(22.1%)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당선됐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전당대회에는 대의원과 각 후보 측 운동원 등 1만4000여 명이 참석했다. 당 대표뿐 아니라 여성 최고위원과 청년 대표를 선출하는 자리였지만 이목이 가장 집중된 것은 이종걸·김상곤·추미애 후보가 나선 당 대표 선거였다.


가장 먼저 연설을 시작한 이 후보는 “‘친문’ 주류가 최고위원회를 싹쓸이하는 것은 단합이 아니라 획일화”라며 “제가 계파에 휘둘리지 않는 공명정대한 후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흰 셔츠에 노란색 세월호 배지를 달고 나온 김상곤 후보는 “광주 출신으로 호남정신을 실천했고, 혁신위원장으로 우리 당을 혁신했다”며 “호남을 복원하고 영남을 전략 지역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노란 정장에 흰 정장바지 차림의 추 후보는 “오직 당원 대의원 동지만 믿고, 오직 더민주만 지켜온, 21년 한길만 걸어온 저 추미애는 민주당을 지키는 친민(親民)이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국민 호위무사 호민(護民)이 되겠다”고 응수했다. 경쟁자들의 공격을 받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참여 전력에 대해서도 “국민께 사죄하며 3보1배 했다. 나중에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몸은 괜찮은지 물으시며 안타까워하셨다”며 “마음의 빚 당 대표가 돼 반드시 대선 승리로 갚겠다”고 말했다.


이번 전당대회는 ‘문심(文心)’ 논란이 사실상 최대 이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인공이었던 문재인 상임고문은 전당대회 시작 시간인 오후 1시쯤 도착해 3명의 당 대표 후보를 비롯해 청년·여성 최고위원 후보 등을 찾아가 일일이 격려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뒤편에 앉은 그는 사회자의 소개로 일어섰을 때 가장 큰 환호와 박수를 받기도 했다. 문 상임고문은 각 후보의 연설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쳤다.


경남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콘서트 참석을 위해 오후 3시쯤 일어선 그는 기자들과 만나 “다시 하나가 되고 또 함께 힘을 모아서 정권교체 꼭 해내리라는 자신과 희망이 생겼다”며 “새 지도부가 당을 잘 봉합해서 대선 승리까지 잘 이끌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전당대회 후 활동에 대해선 “차차 밝히겠다”며 말을 아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도 주목을 받았다. “특정 계파의 독주가 지양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그는 “누구를 찍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 맘에 드는 사람을 찍었다”고만 답했다. 향후 지도부에 대해서도 “새롭게 지도부를 구성하는 사람이 자기 개성에 따라 할 테니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만 했다. 비대위원장으로의 소회를 묻자 “내가 왔을 때 당 지지도가 11%였는데 어제 갤럽 발표 때 26%란 최고 지지도를 만들고 떠나기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당이 미처 갖지 못한 가치와 비전, 광장을 넓게 사용하는 방법 등을 많이 가르쳐 주셨다. 그 덕분에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더민주가 수권정당이 되는 데 큰 주춧돌 역할을 해 주셨다”며 객석에 격려 박수를 요청하기도 했다.


추 후보는 당선 소감을 통해 “분열주의·패배주의·지역주의의 악령을 몰아낼 추풍(秋風)이 왔다”며 “강력한 통합으로 강한 야당을 만들고 공정한 대선 경선으로 승리하는 후보를 만들어 2017년 12월 20일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내라는 명령을 천명으로 알고 받들겠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초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함께 분당된 국민의당 등을 의식한 듯 “당을 가을 전어처럼 통통하게 살찌워서 집 나간 당원들이 다시 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당선자 일문일답.


-승리의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어느 때보다 분열을 끝나고 통합해달라는 당원들의 당심이 절절했다. 저도 통합 대표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분열을 치유하고 균형과 중심을 잘 잡겠다. 저의 그런 호소를 국민과 당원들이 잘 알아주신 것 같다.”


-추 대표의 당선으로 야당의 선명성이 강화될 거란 분석이 많다. 대여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선명성 그 자체는 목표가 아니다. 국익을 지키고 민생을 살리는 데 뚜렷하고 단호하게 나서 ‘민생이 살아나고 숨구멍이 있겠구나’란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주저함이 없도록 하겠다.”


-정권교체를 위한 더민주의 1차 과제는 호남의 민심 회복이라고 한다. 지난 총선에서 압승한 국민의당과 호남 대표를 내세운 새누리당과의 경쟁에서 이길 복안은 있나?“호남이 바라는 것은 무너져가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민생을 해결하는 똑똑한 정당, 확실한 정당, 책임 있는 정당이다. 지난 총선에서 호남은 정치인만을 위한 분열 정치에 회초리를 강하게 든 것이다. 호남의 이러한 열패감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 때 호남 민심이 돌아온다. 호남 민심을 복원할 적임자로 저를 선택했으니 열심히 뛰고 또 뛰어서 보답하겠다.”


-당이 ‘친문’ 일색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그렇게 딱지를 붙이려는 목소리도 있지만 정치는 하루아침에 해내는 게 아니다. 저는 21년 동안 당의 중심추·균형추로 어느 계파의 곁불을 한 번도 쬐 본 적이 없다. 정권 교체만을 위해서 수권 정당을 만들겠다. 공정한 경선이 생명이다. 정당 사상 최초로 경선 전 과정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해 아무런 잡음 없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만들겠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반대 당론을 정하는 것이 필요한가. “국익을 위해, 평화를 위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것이니 (현재 사드 당론을 정하지 않겠다는) 이 당론은 움직일 수 있다. 다시 한번 이 자리에서 말씀을 분명하게 드리고 재검토를 강력하게 요구해 나가겠다.”


최선욱·이지상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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