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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알짜 부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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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호 31면

작가 K는 사춘기 시절부터 이십여년 가까이 살아오던 집이 너무 낡고 고장이 잦자 그 집을 부수고 새로 짓기로 했다. 공사를 하는 동안 기거할 데를 찾다 지인의 소개로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쪽의 신도시로 가게 되었다. 역시 지인에게서 그 지역의 부동산 중개업계에 혜성처럼 나타났다는 인물을 소개받았다.


그의 사무실은 시내 중심가의 요지에 있었는데 간판은 흔히 보이는 ‘중개업소’가 아닌 ‘부동산경제연구소’라고 되어 있었다. 그는 ‘복덕방 영감님’과는 노는 물이 다른, ‘경제연구소장’에 걸맞는 고급 양복에 금빛 시계줄이 드러나는 조끼를 입고 있었고 현란한 지식과 다양한 정보, 논리를 갖춘 전문가로 보였다. 그는 K의 경제력, 가족, 나이, 직업, 취향 등에 관해 시시콜콜 캐묻고 나서 신도시에 새로 조성되고 있는 상업지구의 5층 상가주택을 구입하라고 권했다.


“두고 보세요. 이제는 부동산이 동산을 낳는 시대가 옵니다. 부동산이 포유류나 조류처럼 새끼를 낳냐? 맞습니다. 이 집에서 월세 수입 누리면서 사는 것도 사는 거지만 투자가치가 크다는 게 이 물건을 꼭 사시라는 이유입니다. 꿩먹고 알 먹고 얼마나 좋습니까. 게다가 여기는 혈이 모이는 명당이에요. 선생님 작품에도 좋은 기운을 보태줄 거예요.”


K는 자신에게는 그럴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것을 ‘필력’을 다해 설명했다. 그는 아까운 기회를 날려 보내고 있다고 몇 번이고 혀를 차고 나서 K의 가족이 상가주택의 꼭대기 층 주택에 세를 들도록 주선해 주었다. 중개수수료는 받지 않았다. 예술가에 대한 자기 나름의 재능기부, 후원으로 생각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K는 그 뒤로 별다른 용건이 없으면서도 그의 ‘부동산경제연구소’로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와의 대화가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을 줄 거라는 속셈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중대사를 앞둔 사람처럼 들뜬 표정으로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서성거리다가 K에게 엄청난 비밀을 말해줄 테니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K는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오른손으로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면서.


“선생님, 진짜 부자는 부동산으로 돈 버는 사람들입니다. 부자가 망해도 삼대가 간다는 말은 부동산으로 부가 대물림되었을 때 통용이 되는 말이죠. 동산은 아무리 많아도 바람처럼 모래알처럼 결국 한 사람을 떠나 더 힘센 자에게로 가버리죠. 세금이나 물가 변동, 경기 변화가 금쪽 같은 자산 가치를 갉아먹는데도 현금 가진 사람들은 속수무책인 거예요.”


K는 그가 진짜 본론을 이야기할 때까지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눈부시게 흰 셔츠에 달린 보석 커프스 단추를 몇 번 쓰다듬은 뒤 말을 이었다.


“오늘 여기로 서울에서 사모님 한 분이 오십니다. 사모님은 오래도록 이 지역을 눈여겨 봐오셨는데 제가 그동안 꾸준히 제공해드린 정보를 토대로 마침내 때가 무르익었다 해서 투자를 결심하신 거예요. 그 분이 오시면 이 지역 부동산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이번 주말을 기점으로 이 지역에서 실수요자들이 제일 많은 이십평대에서 삼십평대 사이에 있는 아파트 매물이 전부 사라질 거예요.”


“왜? 어떻게?”


놀란 K는 문장을 채 맺지도 못한 채 물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확보한 물량이 4백 가구예요. 일단 계약금 10퍼센트만 주고 잡은 거죠. 그럼 이 지역에 아파트를 보러오는 사람들은 갑자기 물량이 싹 없어진 걸 알고는 뭔가 엄청난 호재가 있어서 그러나 보다 하고 마음이 급해지지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다음주 주말에는 한 가구 당 5백만 원의 프리미엄이 붙습니다. 다음주에는 그게 천이 되고 그 뒤로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쨌든 한 달 뒤에 사모님은 모든 거래를 종료하고 여기서 철수합니다. 적어도 한 채에 5백 이상은 벌죠. 끝까지 계약이 성사되지 않는 건 극히 일부지만 계약금만 날리면 되니 부담이 별로 없어요. 거래도 전부 가명으로 하니까 세금 문제도 없지요. 흔적도 남지 않고요.”


K는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그건 복부인들의 전형적인 수법 아닌가요? 불법적인 매점매석에 전매, 탈세행위 같은데. 작은 평수 아파트를 찾는 실수요자들은 경제적으로 약자이고 정보가 부족한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한테서 5백, 천씩 뜯어내는 건 양심에 털이라도 나지 않고서는....”


K의 말이 거칠어졌지만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사모님은 우리 세계에서는 큰손 축에도 못 끼는 거고요. 진짜 알짜 부자는 따로 있어요. 이 분들은 단위가 다르죠. 신도시나 산업단지처럼 대형 개발사업이 벌어지는 데서 몇백, 몇천만 평 단위로 땅을 사고 팔지요. 지자체, 건설사, 금융기관하고 연합해서 인프라도 건설하고 학교, 병원, 쇼핑몰, 아파트도 짓고 분양하는 거예요. 한 번 성공하면 한 십 년쯤은 잠수를 타죠. 세계일주 크루즈 여행이나 하면서.”


“기껏 크루즈 여행요? 아예 전용기나 유람선을 통째 사시지.”


“계산만 맞으면 살 분들이에요. 그런데 이 분들이 죽기 전에는 절대로 명의가 바뀌지 않는 부동산이 있어요. 노후에 국내 최고의 요양시설에 들어갔을 경우에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비용을 댈 수 있도록 법적 조치를 완벽하게 해놓지요. 본인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누구도 손을 못 대요. 여기 앞에도 그런 건물이 하나 있는데, 보이시죠?”


그가 가리키는 건물은 그리 크지 않은 십층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 지역에서 가장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는 중심가에 위치해 있었다. 지하부터 6층까지는 각양각색의 유흥시설과 술집이 들어차 있었고 무엇엔가 취하여 견디기 힘든 현실을 잊으려는 손님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7, 8층이 숙박시설이었고 꼭대기 층과 옥탑방에서 주인은 털복숭이 개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K는 좋은 공부했다고 인사를 한 뒤 그 위대한 부동산경제연구소, 아니 중개업소를 나왔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다시 그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친구가 골라준 상가주택 있잖아. 처음에 한 10퍼센트쯤 오르는가 싶더니 내가 나올 때쯤 되니까 반 토막이 났다더라고. 그 알부자 소유라는 건물은 아직도 하루 24시간 번쩍번쩍 번영하고 있고. 영원히 그럴 것처럼.”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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