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등 근육 살아 움직이는 강수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기사 이미지

지난 7월 22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국립발레단 강수진 예술감독이 현역 발레리나로서 은퇴했다.

그의 마지막 무대를 외신 사진으로 접했다.

1400여 관객이 ‘DANKE SUE JIN’이라 적힌 흰 종이를 들고

‘발레리나 강수진’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만으로도 그의 지나온 삶이 읽혀졌다.

그 순간 강 감독의 등 근육이 떠올랐다.


▶추천 기사KGB요원 푸틴, 어떻게 차르가 됐나



그를 만난 게 2014년 6월이었다.

사실 강 감독을 만나기 두어 달 전 그의 등을 훔쳐본 적이 있었다.

젊은 발레리노 사진 촬영을 위해 들른 연습실에서였다.

단원들 앞에서 춤 동작을 시연하는 강 감독의 등 근육을 우연히 보게 됐다.

먼발치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등 근육이 확연히 보였다.

우리 나이 쉰을 목전에 둔 발레리나,

게다가 예술감독을 겸하면서도 유지한 등 근육이었다.

그 등 근육이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듯했다.

그날 이미 작정해 두었다.

언젠가 강 감독을 만나면 반드시 등을 찍겠노라고….

인터뷰 후 강 감독이 여러 의상을 보여주며 내게 선택하라고 했다.

선택은 당연히 등이 제대로 보이는 의상이었다.

그리고 강 감독에게 등 근육을 보여 달라고 했다.

강 감독 또한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 주문을 내게 했다.

“이것저것 다른 사진 요구하지 말고 딱 한 가지로만 승부하시죠.”

여지없이 딱 부러지는 어투였다.

실제로 시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음을 미리 전해들은 터다.

더구나 ‘하루가 24시간밖에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을 정도였다.

실제 강 감독의 스케줄은 이랬다.

매일 오전 5시부터 출근 전까지 개인 연습,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단원들 춤 지도와 발레단 행정업무,

오후 6시부터 밤 10∼11시까지 또 개인 연습이었다.

인터뷰와 촬영 시간을 정확히 정해놓은 터였다.

그러니 이것저것 찍느라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고

단 한 가지로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였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포즈를 취하자마자 등 근육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격렬한 움직임 없이도 근육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지간히 단련해서 이룰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그날의 등 근육,

이는 강수진 스스로의 역사일 뿐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