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의동 골목 풍경 바꾼 집 한 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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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건축주는 집을 설계할 건축가를 처음 소개받고 망설였다. 서울 선유도 공원과 서울어린이대공원 꿈마루 리모델링, 충남 홍천 화가 이응노의 집 건축 등 프로젝트 규모가 수천 평방미터에서 수만평방미터에 달하는 건축가여서다. 건축가 조성룡(72·성균관대 석좌교수), 대규모 공공프로젝트를 많이 해서 공공건축가로 이름난 이에게 설계를 부탁할 집터는 고작 106.17㎡(약 32평)에 불과했다. 그것도 차 한 대가 다니기도 빠듯한 서울 통의동 골목집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건축가는 오히려 되물었다. “나는 왜 작은 집을 설계하면 안 되는 거요?” 공공 건축가의 ‘최소의 집’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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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룡

건축주는 빈 컬렉션의 강금성 대표다. 전통적인 침구공예를 현대화해 국내외로 주목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정동에서 통의동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쇼룸도 새로 짓고자 했다. 건축주는 “되팔기보다 오래도록 빈 컬렉션으로 남을 건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고, 건축가는 “골목이 많은 구도심에서 새 건물이 어떻게 주변과 조화를 이룰지 고민하겠다”고 화답했다. 법적으로 정해진 최대 규모를 짓기보다 공적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공(公共)’에 좀 더 신경쓰기로 했다. 밖에서 보기에 꽉 채운 집보다 다소 헐거운 집을 짓기로 합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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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통의동 빈 컬렉션의 쇼룸. [사진 김재경 작가]

빈 컬렉션의 통의동 집은 엄밀히 말해 1층이 없다. 집터의 절반 가까이 담장 없는 마당으로 골목길을 향해 열어놨다. 1층 문을 열면 지하 2m 가량 판 성큰(sunken) 공간이 먼저 나온다. 철제 복도를 따라 선큰 공간을 가로지르면 1.5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바닥의 일부를 반층씩 엇갈려 쌓는 구조인 ‘스킵 플로어(skip floor)’ 방식으로 건물을 지었다. 이 덕에 통의동 집은 밖에서 보기엔 3층 건물이지만 내부적으로 5개의 층을 갖게 됐다. 골목길에서 유리벽을 통해 집 안을 볼 때도 지상 1층까지 훤히 뚫린 지하 공간이 먼저 보여 갑갑하지 않다. 강 대표는 “방문객들이 밖에서 볼 때 집이 작다고 하는데, 들어오면 층층이 굽이굽이 펼쳐져서 매우 크다고 말한다”며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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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의 일부를 마당으로 열어 골목에 숨통을 틔웠다. [사진 김재경 작가]

건축가는 새 집이 골목에 원래 있었던 듯 자리하길 바랬다. 튀는 재료를 쓰지 않았다. 바깥벽을 재활용 붉은 벽돌과 적삼목 판으로 꾸몄다. 출판사 수류산방의 박상일 방장은 “세월이 지날수록 나무에 때가 끼면서 정겨운 느낌이 날 것 같다”며 “연륜이 깊은 건축가가 도시 안에서 어떤 삶을 먼저 생각해야 할 지를 보여준 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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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 보이는 지하 2m 깊이 성큰(sunken) 공간. [사진 김재경 작가]

집은 올 1월 완공됐다. 공간을 용도별로 구분하지 않아 이불 펼치면 침실로, 소반을 놓으면 식당이 되는 옛 한옥 공간처럼, 전시 작품에 따라 집도 계속 변하고 있다. 통의동 자체에 대한 건축가의 관심도 날로 깊어지고 있다. “경복궁 옆 통의동은 일제시대 때 동양척식회사가 옆에 있어 일본 사람들의 사택이 많이 있었어요. 인왕산 근처의 서촌에 비해 골목길이 반듯하게 난 것도 그때 도로 정비를 했기 때문이죠. 이런 지역에는 어떤 건물을 지어야 할까요. 거창할지 모르겠지만 공공성은 이런 관계를 고민하면서부터 시작합니다.”

선유도공원 설계한 조성룡 교수
106㎡ 집터 위에 ‘3층 쇼룸’ 도전
담장 없는 마당, 1층은 유리벽
골목과 조화 이룬 열린공간으로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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