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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밤의 여왕’ 부르다 음이탈…메릴 스트립 연기가 포인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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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역할로 호흡을 맞춘 메릴 스트립(왼쪽)과 휴 그랜트. [사진 누리 픽쳐스]

세상 누구보다 노래를 향한 열정이 뜨겁지만 재능은 전혀 없다. 게다가 본인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 24일 개봉하는 ‘플로렌스’(원제 Florence Foster Jenkins,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는 세계 음악사에 남은 음치 소프라노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1868~1944) 이야기다. 음악과 예술을 사랑했고, 상속받은 막대한 재산으로 음악가들을 아낌없이 후원했던 미국의 귀족 플로렌스. 문제는 그녀가 ‘뉴욕 최고의 연주회장인 카네기홀에서 공연하겠다’는 마음을 품으며 시작된다.

실화 영화 ‘플로렌스’ 오늘 개봉
카네기홀 무대 오른 음치 이야기
밋밋하게 흐르는 극 전개 아쉬워

극의 배경은 1940년대 미국 뉴욕. 고전음악 후원자이자 ‘베르디 클럽’을 만든 플로렌스는 종종 자신의 클럽에 음악 애호가들을 불러 공연을 연다. 어느 날 프랑스 소프라노 릴리 폰즈(1898~1976)의 공연에 감명받은 그녀는 정식으로 레슨을 받기로 한다. 피아노 연주자로 섭외된 맥문(사이먼 헬버그)은 플로렌스의 노래 실력이 “의학적 미스터리”일 만큼 심각한 음치라는 걸 알아채지만 그녀를 떠나지 못한다. 그녀를 보살피는 남편 베이필드(휴 그랜트)는 플로렌스 공연에 관한 악평을 막으려 동분서주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플로렌스는 혼자 태평이다. 자신을 찾아온 예술가에게 언제나 자애롭고 관대하기만 하다.

이런 플로렌스 역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은 건 메릴 스트립(67)이다. 스트립은 플로렌스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고, 그 순간에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 사람”으로 이해했다.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열창, 이런 자신의 마음을 알아 달라는 듯 빙그레 웃는 모습. 스트립은 60대의 나이가 무색한 귀여운 얼굴로 플로렌스의 순진무구한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한 때 오페라 가수를 꿈꿨을 만큼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메릴 스트립의 음치 연기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아리아를 잘 부르는 듯하다가 결정적인 부분에서 음이탈하는 대목은 역대 음치 연기의 백미로 꼽힐 만하다. 에피소드를 나열하며 극이 다소 밋밋하게 흘러 아쉽지만 메릴 스트립의 눈부신 연기는 이런 단점을 상쇄시킨다.

음치 실력으로 1944년 10월 25일 카네기홀 무대에 선 플로렌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프랑스에서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자비에 지아놀리 감독)이 만들어져 지난 3월 국내에서 개봉된 바 있다. ‘마가렛트…’가 플로렌스를 자신만의 환상에 취한 외로운 사람으로 그렸다면 ‘플로렌스’의 플로렌스는 안쓰러운 음치라기보다는 순수한 열정을 지닌 따뜻한 사람이다. ‘재능과 열정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자신의 삶으로 고스란히 보여주는 플로렌스다. 그의 노래는 당대 사람들의 웃음을 샀지만, 음악에 대한 그의 열망과 애정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진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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