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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던 조국산하 그리려고 왔지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65년 브라질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커미셔너겸 한국 최초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가 미국(뉴욕주 새라토가시)에 눌러앉은 서양화단의 원로 태경 김병기 화백(70)이 22년 만에 돌아왔다.
『귀국전(23∼31일 가나화랑)을 열고, 눈물겹도록 보고싶은 조국의 산하를 그리려고 왔습니다』
김화백은 서울대 미술대교수 서울부고 초대미술과장 한국 미협 3대(64년)이사장 등을 역임한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
1933년 일본 전위미술의 발상지인 동경 아방가르드미술연구소에 들어가 수화 김환기와 함께 파리에서 갓 돌아온 「후지따 쓰구지」(등전사치) 에게 추상미술을 공부했다.
귀국전을 열게된 동기는?
『지난해 연말 호암 갤러리 전문위원으로 지금 뉴욕에서 공부하고 있는 윤범모씨 (미술평론가) 가 내게 찾아왔어요.
작품을 보더니 이 정도 (1백여점)면 회고전도 열겠다고 부추기고, 미술 대학 제자들도 서울에서 전시회 한번 열라고 해서 용기를 얻었지요]
어떤 작품을 내놓으시렵니까?
『내 그림은 추상과 초현실의 완충지대에 있는 형상입니다. 한국에서는 서양적인 것만 찾던 사람이 미국에 가서는 동양적인 것만 찾게 되었습니다. 정물도 한국물건으로 소재를 삼았지요. 25점만 걸 생각입니다.』
대향 이중섭 화백과는 절친하게 지내셨다면서요?
『「볼춘이」(볼이 벌겋고 커서 붙은 이중섭 별명)와 나는 평양 종로보통학교 동기
동창입니다. 그는 오산고보로, 나는 광성고보로 진학했다가 일본에 유학, 문화학원에서 다시 만났지요 (대향이 1년 후배)』
올해가 대향의 30주기여서 중앙일보사가 대회고전(6월 16일∼7월 24일) 을 마련했습니다.
『벌써 30주기가 되었나요. 그거 참 잘한 일입니다. 대향은 변소 청소하고 마당 쓸면서도「나는 먹을 자격이 없다」고 먹지 않아서 죽었습니다. 유난히 정의감이 투철했던 대향의 예술작품을 내가 귀국해서 보게되어 감개무량합니다. 전시회가 열리면 옛날 실력 (미술평론가) 을 발휘해서 「이중섭의 인생과 예술론」을 한번 써보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여생을 한국에서 보내고 싶습니다. 「수구초심」 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
김화백은 부인 김순환씨(전 국회부의장 김동원씨의 맏딸)와의 사이에 2남 3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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