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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텔링] “악귀 씌었다” 애완견 죽인 뒤, “악귀 옮겨갔다” 딸마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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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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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형사 생활 28년 만에 이렇게 황당하고 엽기적인 사건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5일간 한 끼도 안 먹은 엄마·오빠
3년 키운 개가 심하게 짖자 살해
딸이 엄마 목 조르려 하자 참극

지난 19일 오전 9시쯤 경기도 시흥에서 살인 사건 신고가 들어왔을 때만 해도 오빠(26·직장인)가 여동생(25·무직)을 살해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30평대 평범한 아파트 살인 사건 현장은 뭔가 이상했다. 시신의 몸에서 목 부분이 분리된 상태였다. 설령 아무리 심하게 다퉜더라도 친여동생을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죽였겠나 싶었다.

당일 오후 피살자의 아버지(54·구두수선공)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이 자수하기 위해 경찰서로 가고 있다고 알려왔다. 피살자의 어머니(54·주부)와 함께 걸어오는 아들(피살자의 오빠)을 체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의 단독 범행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들이 “현장에 엄마가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다. 아들은 “어머니가 흉기와 둔기를 갖고 오라고 해서 가져갔고 어머니가 흉기로 (여동생의) 목을 찌르고, 나는 둔기로 동생의 옆구리를 때렸다”고 진술했다.

아들에게 “왜 죽였느냐”고 물었더니 “애완견(푸들)의 악귀가 동생에게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대답해 흠칫 놀랐다. 어이가 없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재차 되물었더니 “동생이 엄마의 목을 조르려는 행동을 하기에 애완견의 악귀가 옮겨간 것으로 봤다”고 진술했다. 그럼 “왜 애완견에게 악귀가 씌었다고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애완견 푸들이) 갑자기 너무 크게 짖었기 때문”이라고만 답했다.

 개가 너무 심하게 짖는다는 이유 때문에 어머니와 아들·딸은 지난 19일 오전 6시30분쯤 3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5㎏ 남짓한 푸들을 흉기로 찌르고 야구방망이로 때려 죽였다고 한다. 애완견을 죽일 때는 딸도 동참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급변했다고 한다. 아들은 “애완견을 죽인 직후인 오전 6시40분쯤 옆에 있던 딸이 손을 떨며 엄마의 목을 조르려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아들은 “애완견의 악귀가 딸에게 옮겨갔다”며 딸을 화장실로 데려가 살해했다고 한다. 악귀가 더 옮겨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시신을 훼손했다고 한다.

이들 3명은 지난 15일부터 사건 발생 당일까지 닷새 동안 한 끼도 먹지 않고 굶었다고 한다. 사건 발생 당일 세 사람은 거실 마루에 앉아 밤새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상황을 잠정 정리하면 이렇다. 닷새 동안 굶고 밤을 새운 탓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 상황에서 애완견의 짖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애완견의 죽음을 본 딸이 어머니의 목을 조르려고 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 이런 행동을 어머니와 아들은 “악귀가 옮겨갔다”고 여겼다.

이렇게 결론을 내기에는 여전히 뭔가 미심쩍어 보인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 “(당사자들이) 특정 종교에 빠졌다”거나 “피해자의 외할머니가 무속인이었다”는 말들이 돌았다. 다만 이런 내용들이 살인 사건과 연관이 있는지는 따로 조사해 봐야 알 수 있다. 어머니와 아들에게는 21일 구속 영장이 발부됐다.

경찰은 정확한 살인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를 투입해 면담하고 있다.

※이 기사는 경기도 시흥경찰서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담당 형사의 눈으로 재구성했다.

시흥=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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