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좌절 딛고 일어선 박인비의 빛나는 금메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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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자 골프에 출전한 박인비 선수가 21일 한국 선수단에 9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116년 만에 열린 올림픽 무대에서 여자 골프 최강국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 개가다. 세계 골프 역사도 새로 썼다. 박 선수는 지난해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해 아시아 선수론 처음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대회 제패)을 이뤘다. 이번 올림픽 우승으로 전 세계 남녀 선수 중 최초로 ‘커리어 골든 슬램’(올림픽 우승+4대 메이저 대회 제패)을 달성한 선수가 됐다.

사실 올림픽 직전까지만 해도 박 선수가 이런 성과를 내리라고 기대하긴 쉽지 않았다. 그는 왼손 엄지 부상으로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세계 대회는 물론 국내 대회에서조차 예선탈락(컷오프)을 당했다. 올림픽 출전 결정을 늦추자 ‘지카 바이러스 때문에 안 나가려 한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막상 출전을 결정하자 “차라리 다른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게 더 낫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럼에도 그는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고 최상의 결과를 일궈냈다.

박 선수는 경기를 마친 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올림픽 정신대로 겸허한 자세로 임했다. 결과를 떠나 후회 없는 올림픽을 치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동안 부진했지만 여전히 좋은 골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행복하다”고도 했다. 결과 못잖게 과정도 금메달을 받기에 손색이 없다. 깊은 좌절을 딛고 일어선 덕분인지 나흘 내내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박 선수 말고도 이번 올림픽엔 이런 칭찬을 받을 만한 한국 선수가 적지 않다. 불가능한 점수 차이를 극복하고 우승한 펜싱의 박상영 선수나 주종목에서의 패배 충격을 딛고 금메달을 따낸 사격 진종오 선수가 그랬다. 리듬체조에서 아깝게 4위를 한 손연재 선수나 8강에서 분패한 여자 배구 선수들도 최선을 다해 한계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과 눈물의 가치가 메달 획득 여부로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실력을 후회 없이 쏟아내는 선수들 덕에 유례 없는 폭염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