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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위안부 할머니들 “그 정도면 됐다” 할 때 소녀상 논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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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회의용 탁자 위에는 책이 수북했다. 책꽂이에 들어가지 못한 국내외 잡지와 서적들이 몇 겹으로 쌓여 있다. 광화문 외교부 청사를 대각선 방향으로 마주 보고 있는 사무실에서 지난 17일 유명환(70) 세종대 이사장을 만났다. 그가 이명박 정부 초기 2년7개월간의 외교부 장관을 마친 지 6년. 하지만 아직도 국제 현안에 묻혀 있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점심·저녁에는 항상 약속이 꽉 차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어떻게 하지? 2만5000원에 맞춰야 하나?” 그는 특유의 미소와 조크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쉬어도 되지만 나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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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7일 “위안부 할머니들이 원하는 게 서로 달라 한꺼번엔 다 못하더라도 금전적 지원을 포함해 개별적인 필요에 맞춰 지원하기로 한·일 간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사진 김경록 기자]

지난 6월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샹그릴라 발언에서 한국이 빠진 걸 듣고는 미국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정확한 의도를 알기 위해서다. 그렇게 얻은 정보로 외교부에 조언해 주기도 한다. 미국·일본통인 그는 중국에도 매년 한 번 이상 지인들을 찾아간다.

최근에는 일본군위안부재단설립준비위원회에서 민간 측 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지난달 정식 출범한 ‘화해·치유재단’ 이사로는 참여하지 않았다. 현재 고문이다.

“저보고 정식 재단 이사장을 맡으라고 했는데 순수 민간인이 맡는 게 좋다고 말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나서면 정부가 주도하는 인상이 됩니다. 또 할머니들을 만나 설득해야 하는데 같은 여자로서 말하는 게 공감대를 넓힐 수 있지 않겠어요. 제일 중요한 게 피해자 할머니들 지지를 받는 겁니다. 그분들이 참여하고, 재단이 잘되려면 부단히 만나야 합니다. 한 번 만나 금전적 지원하는 걸로는 치유가 안 됩니다.”

한·일 간 합의가 갑자기 이뤄졌네요.
“위안부 문제는 정부 공식 관료 레벨에서 아무리 논의해도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기본적인 입장에 차이가 있어서…. 12·28 합의는 어떻게 보면 정치적 해결입니다. 이만하면 100%는 만족하지 못해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선을 찾은 겁니다. 양국 외교장관 합의 형식이었지만 정상 간의 정치적 타결이라고 봐야죠. 위안부 문제를 계속 미결상태로 놔둬서 한·일 간에 걸림돌이 되는 건 좋지 않다, 또 할머니들 돌아가시기 전에 다시 한 번 일본 총리의 사과를 받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금전적 지원을 받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겁니다.”

그는 시민단체에 아쉬움도 토로했다.

“위안부 단체들이 합의에 반대 의견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걸 넘어 재단이 완전히 기능하지 못하도록 끈질기게 막는 건 정말 할머니들을 위한, 인도적 행동인지 의구심을 주는 상황까지 가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관계해 온 민간단체들의 역할도 인정해주고 정부 지원으로 새로운 활동방향을 모색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반대한다고 (합의가) 무효화되진 않습니다.”

시민단체들이 이사진에서 배제됐는데.
“이사가 15명인데 현재 10명만 인선했습니다. 나머지는 지금까지 반대해온 학자들이나 민간단체에 참여해 달라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은 다 만났습니까.
“제가 알기론 돌아가시기 전에 마흔여섯 분을 기준으로, 그중 서른일곱 분을 접촉했습니다. 대부분은 직접 만나고 몇 분은 전화로, 가족하고 해서. 80% 이상이 찬성하시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같이 생활하시는 세 분은 접촉이 안 됐다고 합니다. 나눔의집 분들은 됐는데 그게 좀 안타까운 일입니다. 재단 설립에 반대하더라도 자유롭게 만나서… 반대 의견도 들을 수 있잖아요. 근데 접촉 자체가 안 되는 건 재단 입장에선 좀 섭섭하죠.”
의견 수렴이 안 되면 진척이 어렵겠네요.
“벌써 할머니 서른일곱 분은 뭘 원하는지 들었습니다. 어떤 분은 당장 금전적인 게 필요하고, 어떤 분은 일본 총리가 사죄 편지라도 써주기를 원하고, 어떤 분은 죽기 전에 손주 장학금으로 쓰고 싶다고 하고… 한꺼번엔 다 못하더라도 여러 가지 다르니까 맞춤형 지원을 하자는 것이죠. 그다음에 12·28 합의엔 사업을 하게 돼 있는데 거기 돈을 많이 쓰는 건 옳지 않고…. 기념시설이나 기념공원, 그런 건 전체 예산의 일부분만 들여서 하고 나머지는 개별 필요에 따라 지원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본에선 개별 현금 지원은 아니라고 보도했는데.
“그건 그 돈을 N분의 1로 나눠서 줄 경우 합의에 반대하는 측에 돈이 들어가지 않느냐 하는 기우죠. 그래서 국장급 협의 때 할머니들 필요에 따라 한다고 합의했어요.”
10억 엔 외에 우리가 조성하는 재원은 없나요.
“여론조사에서 ‘왜 우리 정부가 예산을 쓰느냐’고 해서…. 1단계는 우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초점을 맞추자는 게 대다수 의견이었어요. 대신 행정비용은 정부 예산으로 합니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은 가급적 할머니들을 위해 쓰는 게 맞다고 판단하니까.”
소녀상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존엄을 회복하는 목적에 (출연금을) 쓴다고 한·일 간에 분명히 합의했잖아요. 소녀상을 전제로 하면 철거를 위해 돈을 낸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죠. 그건 합의의 도덕적 기반을 스스로 훼손하는 겁니다. 물론 철거한다는 게 아니라 설립단체들과 협의해 노력한다고 했는데 그건 문자 그대로예요. 그것을 약속할 수도 없는 거고, 민간이 한 거니까.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정도면 됐다’ 하면 그건 그다음 단계에 할머니들 의견으로 해결되는 거지 정부가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이건 합의 취지에 어긋나는 겁니다.”
사드(THAAD) 논란은 어떻게 보나요.
“SOFA(주둔군지위협정)에 따라 주한미군을 북한 핵미사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공포대 하나 갖다 놓는 겁니다.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게 점점 커졌습니다. 성주에 배치될 정도의 레이더는 홋카이도·오키나와 등에도 있습니다. 너무 신중하게 협의하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소지가 됐고, 중국이 관여할 빌미를 줬습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처럼 됐습니다.
“잘못된 거지요. 주한미군 주둔이 계속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사드를 반대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 자기 군대를 적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시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중국을 설득할 방법이 없나요.
“우리 정부도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기술적 문제를 협의하자고. 우리는 사드 레이더의 운영각을 고정시키고 탐지 범위를 600㎞ 이내로 제한한다든지, 그런 기술적인 것 갖고 한·중뿐 아니라 한·중·미 3국이 협의하자고 몇 번 제안했어요. 근데 중국은 ‘다 필요 없다’ ‘다 안다’ ‘무조건 반대다’ 하는 거죠.”
중국에 다른 노림수가 있나요.
“추측하건대 한국이 한·미·일 대중 미사일방어(MD)체계로 들어가는 첫 단계가 아니냐고 의심하는 건데 얼마 전 한국에 온 제임스 시링 미국 미사일방어청장이 이건 MD 시스템과는 별개고 북한 미사일에 대한 대응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잖아요. 우리 고위 관리도 북한 미사일·핵이 해결되면 사드가 필요 없다고 말했고. 우리로선 나라를 지키기 위한 주권행사인데 중국이 과도하게 반대하는 건 이해하기 힘듭니다.”
많은 사람이 중국 보복을 걱정합니다.
“걱정스러운 건 알지만 국가 안보에 관한 결정은 그런 경제적 이익 때문에 타협할 수 없다는 건 원칙의 문제입니다. 중국의 전략적 이해에도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중국의 전략적 이해를 감안해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미사일방어 체계로 안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많은 돈을 들여 독자적 대북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도 개발하고…. 미국도 우리 처지를 이해합니다. 그런데 중국이 우리를 자꾸 그쪽으로 밀어내는 꼴입니다.”

 

[S BOX] “한국과 일본, 가해자?피해자 프레임 벗어나야”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한·일 관계를 좀 길게 보자고 말했다.

“지금까지 50년은 피해자-가해자 패러다임 속에서 서로 끌려온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에 막 해도 되고, 일본은 항상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죄해야 하고…. 그러나 서로를 필요로 했고, 냉전체제 속에서 미국이 많은 역할을 했죠. 그런데 수교 50년을 계기로 패러다임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세력 균형에 변화가 생겼고 중국의 부상, 한국의 경제 발전, 세대 교체, 일본말을 할 수 없는 세대가 왔고….”

그는 양국이 무엇을 같이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얼마 안 되는 우방으로서 동북아 평화, 세계 평화를 위해 무얼 할 수 있나. 이런 비전을 갖고 한·일 관계를 끌고 나가지 않으면 미래지향적 관계가 어렵게 됩니다. 한·중·일 협력도 한국이 상당히 많이 끌고 나간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데서 역할을 하고, 이제 가해자-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야죠. 젊은 사람들은 일본에 그런 감정이 없고, 일본 젊은 사람들도 편견이 많이 희석됐습니다.”

그는 각계의 한·일 교류, 특히 청소년 교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정부가 돈을 좀 더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번이라도 상대 나라에 가보면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그는 서울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1973년 외무고시 7회에 합격했다. 미주국장·유엔공사·주미공사·주이스라엘대사·주필리핀대사를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부 제2차관·제1차관과 주일대사,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세종대 이사장이다.

김진국 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정리=유지혜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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