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아버지가 증발한 시대, 아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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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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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아들의 심리학
마시모 레칼카티 지음
윤병언 옮김, 책세상
252쪽, 1만5000원

권위있는 아버지의 시대는 끝났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저자는 “아버지는 증발했다”고 단언한다. 당연히 프로이트 이후 남성의 심리구조와 관계를 지배해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통용되지 않는다. 아버지를 적으로 여겨 그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동침하는 파국의 시나리오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어른이 부재한 시대에 적합한 아들로 텔레마코스를 지목한다.

텔레마코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아들이다. 그는 전쟁터로 떠난 아버지를 20년 동안 기다린다. 그는 아버지와 경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의 계율을 통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희망의 존재로 바라본다. 결국 아버지와 재회한 그는 어머니를 빼앗으려던 난봉꾼들을 함께 제압한다.

텔레마코스는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 는 인물이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불가능한 세계, 부성이 증발된 세계의 ‘버려진 아들’이라는 운명을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저자는 텔레마코스라는 아들의 상을 통해 현대인의 심리 구조가 오이디푸스의 원형을 탈피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조명한다. 그와 함께 새로운 심리학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흥미롭지만, 논리의 생략이 심해 낯선 정신분석학 용어가 쏟아지는 사고의 전개과정을 따라가기가 쉽진 않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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