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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 "소련 열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파리=주원상 특파원】영화『람보』시리즈 등에 열광하는데서 보듯 미국 사회가 반소·반공 무드로 팽배해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사회의 각 분야에서는 최근 소련 열풍이 세게 불고 있다.
소련 바람은 우선 패션계에서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난 달 파리의 카페 뒤 루브르에서 있었던「87년 겨울 모드」소개 패션쇼에 세계적인 의상 디자이너인「티에리·뮈로레르」와「강·폴·골티에」는 각각 적군들이 퍼레이드 때 입는 초록과 회색조의 긴 망토, 시릴르자모(슬라브 문자)가 프린트 된 천으로 만든 콜호즈(집단농장)농민들의 의상을 선 보였다.
「클로드·몽타나」「안젤로·타를라지」「다니엘·에쉬테르」등도 소련 우주인복장의 콤
비네이션과 러시아 인형복·KGB(소 비밀경찰)요원들의 정복·코자크바지·시베리아 방한복 스타일을 올 겨울 모드로 내놓았다.
「피에르·카르댕」이 모스크바에 2만 평방m 규모의 의상 점을 개점, 자신의 상표에「메이드 인 러시아」딱지를 붙여「피에르·카르댕」의상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드 계에 바야흐로 불어닥친 소련바람의 일환이다.
이들 유명 디자이너들은 패션계의 이 같은 현상을『소련의 로맨티시즘이 주는 많은 영감』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복식 디자이너들은 전통적인 러시아에서 보다 오히려 지금의 소련에서 더 큰 인스피레이션을 얻고 있다고 밝히고『혁명기념물을 좋아하는 것이 곧 혁명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하고 있다.
이들은 또 이 같은 현상을 순수한 미학적 행동의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소련 바람은 출판계에도 느닷없이 불어 파리의 앙크르 출판사가 소련의 탐정소설『페트로브나가 38번지』시리즈를 번역 출간하기 시작했고 다른 출판사들도 경쟁적으로 소련 작품들의 번역소개에 뛰어들고 있다.
별로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소련 요리도 소련 바람을 타고 새롭게 각광을 받기 시작, 파리의 바스티유광장 부근에 새로 생긴 라차이카라는 러시아 식당은 인기 영화배우· 출판인·작가들이 밤마다 몰려들어 발 들여놓을 틈이 없을 만큼 성업중이다.
지난 3월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소련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 하루치를 현지어로 완역, 각기 또만, 20만 부를 판매한 뒤를 이어 서독에서도 독일어 판을 30만 부 인쇄, 판매하고 있다.
소련 열풍은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영국가수「스팅」이 부른『러시안』은 전 세계에서 8백 만장의 앨범이 팔렸고 곳곳에서 금 디스크 상을 휩쓸고 있다.
적군의 여군을 소재로 한「엘튼·존즈」의 비디오클립『니키타』도 선풍적 인기 속에 프랑스에서만 40만개가 나갔다.
런던에서는 우크라이나 농가의 부녀자들이 사용하는 꽃무늬 목도리가 크게 유행하고 있으며「크리스·버너드」의 영화『「브레즈네프」에게 보내는 편지』와 러시아와 영국 남녀의 사랑을 그린「로널드·하우드」의 무대극『통역관들』은 입장권을 사기 어려울 정도로 항상 관객이 초만원이다.
코카서스 평원이나 레닌그라드 등 소련을 찾는 서구 관광객도 해마다 늘어 지난 83년 한해동안 15만 명의 프랑스 인이 소련 관광에 나섰으며 서독에선 32만 명이 소련 행 비행기를 탔다. 소련 방문 서독 관광객은 지난 3년 사이 1백%가 늘었다.
한편 파리의 시사주간 르프왱지는 최근호에서『소련의 멋이 서구에 흘러들고 있다』는 제목으로 서구에서의 이 같은 소련바람을 특집으로 소개하고 슬라브의 매력이 철의 장막을 뚫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잡지는 서구인 모두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강제수용소, 반체제 인사에 대한 박해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만큼 이러한 소련바람이 여론의 극단적인 친소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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