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질방지제 유해시비서 발단|토코페롤 논쟁…「라면싸움」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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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가뜩이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의 치열한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는 라면업계가 최근 라면첨가물을 둘러싼 이른바「토코페롤 논쟁」이 시작됨에 따라 한차례 격돌이 불가피할 듯.
문제의 발단은 라면업계의 최고참인 삼양과 최신 참인 빙그레가 지난3일 동시에 「인체에 유해가능성 시비가 일고 있는 합성항산화제(BHA·BHT)대신 천연토코페롤을 사용한다」는 요지의 광고를 통해 각기 국내 최초임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시작됐다.
삼양 측은 종전의 식품첨가물인 합성산화방지제 (BHA)대신 천연토코페롤을 사용하게 됨으로써「방부제는 일체 쓰지 않게 됐다」고 자사신제품을 선전했고, 후발업체 빙그레는「최근 일본에서는 합성산화방지제를 실험한 결과 유해성 시비가 있어 소비자단체와 유통업체의 반발로 이를 천연 토코페롤로 교체하게 된 것」이라고 보다 구체적인 실명을 게재했다.
이렇게 되자 즉각 발끈하고 나선 것은 주무당국인 보사부. 문제의 합성산화방지제인 BHA가 보사부 허가품목으로 기름 km부 0·2㎎이내에서 사용하는 경우 인체에 무해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려왔던 만큼 라면업계의 천연토코페롤 광고전으로 인해 보사부의 입장이 난처해졌기 때문.
이에 따라 보사부는 지난7일 관련업자들을 불러들여 기존첨가물인 합성산화방지제가 마치 인체에 유해한 것처럼 표현한 광고를 더 이상하지 말 것을 층용, 확인 서까지 받아 냈다.
한편 삼양과 빙그레의 광고전을 지켜보고 있는 농심·한국야쿠르트·청회 등 나머지 라면메이커들은 BHA가엄연한 보사부허가품목인데도 불구하고 양 사가 천연 토코페롤 사용을 미끼로 과장광고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형편.
산화방지제란 일반적으로 튀김식품에 쓰이는 기름의 변질을 막아 주는 식품첨가물로 아직 인체유해성이 학문적으로 입증된 사실은 없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미FDA(식품의약국)에서도 아직 유해판정을 내린 일이 없으나 다만 유해가능성을 따지기 위해 일본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현재 진행 중에 있다.
그러나 일본의 유명 라면메이커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산화방지제로 BHA 대신 천연토코페롤을 사용하고 있다.
국내업체들의 경우도 삼양과 농심이 미국시장에 수출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합성산화방지제대신 별도로 천연토코페롤을 사용해 왔었다.
식품영양학자인 장현기 교수(숭의여전)에 따르면『BHA는 지난82년 일본 후생 성으로부터 사용이 금지됐으나 현재 그 실시가 잠정연기 된 상태』라면서『유해사실 여부를 떠나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시비가 자주 벌어져야 소비자들이 보다 안전한 식품을 먹게 될 수 있을 것이므로 라면업계의 토코페롤논쟁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편 한국소비자연맹은 지난 9일 5개 라면메이커들의 대표를 불러「라면·BHA·BHT· 토코페롤」이란주제로 간담회를 갖고 기존식품첨가물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소비자 연맹 측은 미국에 수출하는 라면에는 천연 토코페롤을 사용하면서 국내시장제품에는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라면업계 측은 천연토코페롤의 가격이 기존 산화방지제에 비해 10배(1개에 80전)가량이나 비싸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조만간 천연토코페롤로의 대체가 인체 유해여부에 관계없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라면업체들간의 시장쟁탈전은 시설과잉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더욱 격렬해질 전망.
현재 라면업계의 생산능력은 연간 65억 봉지로 연 48억 봉지(84년 기준)수준의 실제소비량을 크게 초과하고 있는 상태. 이런 형편에서 신규업체들의 의욕 치(?)를 포함, 5개 라면회사들은 올해 중 모두 4천5백여 억 원의 매출 목표를 잡고 있어 잘해야 3천5백 억 원 규모인 올 라면시장을 놓고 또 한 차례 격돌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한국야쿠르트를 선두로 빙그레·청 보 등 이 올들어 잇달아 스낵시장에도 진출, 라면 선·후발업체간의 싸움은 확대 일로. 신규업체들의 스낵시장참여는 당초 라면에 손대면서부터 계획됐던 코스로 작년에 1천2백 억 원 정도에 불과했던 스낵시장이 향후 5년 안에 감절 이상 수준으로 불어날것에 기대하고 있다는 것.
라면과 스낵 류는 밀가루·튀김기름 등 원 부자재의 공통활용이 가능하고 유통방식도 같아 라면업체들마다 영업정책상 겸업이 필수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토코페롤=비타민E의 다른 이름으로 콩·밀 등의 씨눈에 많이 함유돼 있다. 천연·인공 등 두 종류가 있으며 부임예방에 관계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체내에서 지질산화를 막아 항노 화제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지방으로 가공하는 식품의 경우 탱크에 보관하는 지방에 산화방지제로 첨가된다. <이장규·박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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