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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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돌아온 기분이요? 만점이지요』지난 14일 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린「스탈린」의 외손녀「올가」양(14) 의 첫마디 말.
그의 어머니며「스탈린」의 친딸인「스베틀라나」를 따라 소련에서 18개월 동안 살다가 서방으로 다시 돌아온 소감이었다.
1967년 인도에서 미국대사관으로 망명, 미국적 취득 후 미국인 건축가와 결혼, 딸「올가」 양을 얻고 73년 이혼, 임 년 돌연 기자회견을 열고 소련으로의 회귀 의사 표명. 그때「스베틀라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나의 서방생활은 하루도 즐거운 날이 없었다.』
-『미국 CIA(중앙정보국)는 나를 애완동물로 이용했다.』
소련 정부는 이례적으로 그에게 시민권을 다시 주고 그들 모녀를 받아들였다. 그동안 이들은「스탈린」의 고향인 그루지아 공화국 수도 트빌리 시에서 살고 있었다.
그「스베틀라나」가「올가」양을 뒤쫓아 l6일 미국 시카고에 도착했다. 그야말로「역U턴」이었다.
이 60노파의 방황을 보며 분단국에 사는 우리는 각별한 느낌을 갖게 된다. 고향을 못 잊어 원망의 소리를 남겨 놓고 러시아로 떠났던 노파는 무슨 심정으로 다시 돌아온 것일까.
이런 얘기가 있다. 젊은 소련 사회학자가 자본주의를 연구하기 위해 외국에 파견되었다. 파리, 런던, 로마, 뉴욕을 방문하고 돌아온 그는 동료들에게 소감을 말했다.
『나는 자본주의가 죽어 가고 있는 것 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네!』
『역시 그렇군!』친구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행복한 안락사를 하고 있더군]
비슷한 얘기가 또 하나 있다. 모스크바 대학생이 대학원 진학을 위해면접시험을 받고 있었다. 시험관이 물었다.
『자본주의에 관해 말해 보시오.』
『자본주의는 지금 절벽에 다다랐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마르크스주의는?』
『네, 자본주의보다 한 발씩 앞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한 외국 잡지는 소련의 풍물을 얘기하며「아보시카」라는 것을 소개했다. 무슨 자루 (대)인 모양이다. 소련 여성들은 누구나 그것을 핸드백에 넣고 다니는데, 언제어디서든지 생활 필수품이 눈에 띄면 살 준비를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물론 물질생활이「스베틀라나」를 방황하게 만드는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는 고향의 풍광보다, 고향의 인정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자유분방한 삶이라는 것을 뒤늦게 절감한 것은 아닐까. 초 노의 인생이 고향을 버린다는 것은 보통의 용단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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