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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피 5000만원 드려요”… 로또된 아파트 분양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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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 유동자금이 아파트 분양시장에 몰리고 있다. 분양권 투자는 적은 자본금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재테크 수단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위험도가 가장 큰 상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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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분양권에 5000만원가량 웃돈이 붙어 거래된 경기도 하남 미사강변도시 일대(위). 분양권 웃돈을 기대하는 가수요가 늘면서 지난 6월 경기도 화성시 힐스테이트 동탄 견본주택에 들어가기 위해 방문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아래).

지난 6월 6일 진행된 1순위 청약 접수에서 평균 54대 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보인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도시 C2블록 미사강변 호반 써밋플레이스 아파트. 같은 달 13일 당첨자 발표가 있었는데 발표 직후부터 분양권 전매(매매)를 부추기는 떴다방(이동식 부동산중개업자)의 영업이 시작됐다. 청약해 당첨된 A씨는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는지 발표날인 13일에만 부동산중개업소라면서 분양권을 팔라는 전화가 5통 왔다”며 “대부분 초피 5000만원을 줄테니 매도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부동산 과열’ 현장

초피는 당첨자 발표 이후 계약 전 행해지는 불법 분양권 거래에 형성된 웃돈을 일컫는 말이다. 다음날인 14일에는 또다른 중개업소 사장이 전화를 걸어 초피 7000만 원을 챙겨주겠다고 했단다. A씨는 “계약일이 가까워질수록 초피는 떨어진다며 매도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하남 미사강변도시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위례신도시 등과 함께 6월 21일부터 국토교통부가 지방자치단체와 합동으로 다운계약이나 분양권 불법거래 등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섰던 곳이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불법 거래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미사뿐 아니라 강 건너에 위치한 남양주 다산 신도시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자체의 단속 소식에 견본주택 현장에 진을 치고 있던 떴다방은 사라졌지만 기존 떴다방이 인터넷으로 옮겨가면서 불법 전매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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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불법 전매 행위는 단속에 적발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10년 동안 청약자격도 제한된다. 단속에 걸리지 않더라도 전매제한이 풀리는 시점의 가격 변동에 따라 매도자나 매수자 모두 피해를 볼 수 있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전매가 풀리는 시점에 가격이 올라 매도자가 추가 웃돈을 요구하면서 명의 이전을 거부할 수 있고, 또 매도자는 가격이 내리면 불법거래 계약서를 빌미로 가격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며 조언했다.

6월 1일부터 분양권 전매 제한이 풀린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가락시영 재건축 아파트). 요즘 이 아파트엔 매수세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단지의 분양권 거래 건수는 7월 초까지 224건이나 됐다. 이는 전체 일반분양 물량 1558가구의 14.4% 수준이다.

특히 투자자와 실수요자가 모두 선호하는 전용면적 59㎡는 일반분양 174가구의 23%에 달하는 40건의 손 바뀜이 일어났다. 매수세가 끊이지 않으면서 웃돈도 한 달 새 1000만~2000만원 상승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분양권으로 몰리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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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정보회사인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6월 전국에서 1만2372건의 분양권이 사고 팔렸다. 전달(1만2904건)보다는 532건(4.1%) 줄어든 수치지만 지난 4월(1만2812건)을 기록한 후 3개월 째 1만2000건이 넘는 손바뀜이 이어졌다.

서울의 경우 5월 685건에서 6월 770건으로 85건(12.4%) 증가했고, 경기도 같은 기간 2902건에서 3306건으로 404건(13.9%) 늘었다. 집중점검 지역 중에서는 유일하게 부산만 2199건에서 1882건으로 317건(14.4%) 줄었다. 송파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정부가 단속을 시작한 이후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퍼지며 매수 문의가 줄었었다”며 “하지만 워낙 청약 시장이 좋다보니 이 영향이 오래가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서 청약 경쟁률 신기록이 경신되는 등 분양 열기가 뜨거운 상황이다. 6월 6일엔 서울 흑석뉴타운의 아크로리버하임이 1순위에서만 평균 89.5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이전 최고 경쟁률인 래미안 루체하임(평균 50대 1)을 경신했다.

이틀 뒤인 8일엔 105가구(특별공급 제외)를 모집한 세종 신동아 파밀리에 4차가 1순위에서만 2만1180명이 몰리며 평균 경쟁률은 201.71대 1로 세종시 청약 사상 최고 경쟁률을 다시 썼다. 같은 날 경기 하남에서도 신기록이 새로 쓰였다. 561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4만3499명이 접수해 미사강변도시 사상 최고 경쟁률인 평균 77.54대 1을 기록했다.

부동산정보회사인 부동산114의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청약 시장과 분양권 거래시장은 맞물려 돌아간다”며 “최근 분양시장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 분양권 거래 증가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금리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유동자금이 분양시장으로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분간 청약과 분양권 거래열기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중 유동자금이 왜 분양시장, 분양권에 몰리고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기 수익률이 주식시장은 물론 그 어떤 투자시장보다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계약금 3000만원 정도만 내고 중도금은 무이자 대출 형태로 분양권 투자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분양가가 3억원이라고 하면 웃돈이 5%만 붙어도 1500만원이 된다. 그러면 처음부터 분양을 받아 입주까지 기다리는 실수요자는 수익률이 5%에 불과하지만 분양권 전매를 노린 사람은 3000만원 투자에 1500만원 수익이니 수익률이 무려 50%에 달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10개 정도 하면 1억5000만원이 짧은 기간 내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면 분양권에 웃돈이 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주택 보급률이 낮았던 예전에는 주택 청약이 자기 집을 마련하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이 때문에 새로 공급하는 주택 수보다 청약을 받으려는 수요자가 언제나 넘쳤기 때문에 청약 자격을 제한하기도 했다.

몇 년 이상 청약통장을 유지해야 하고 가구주의 나이나 무주택 기간, 주택 소유 이력까지 깐깐한 조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청약이 허용됐다. 그러니 이런 조건을 갖추지 않은 실수요자로선 일정액의 웃돈을 주고서라도 분양권을 사는 게 본인이 그런 조건을 갖출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효율적인 결정이 되는 셈이었다.


그만큼 위험성도 커 조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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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경기도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 견본주택 앞에서 ‘분양권 야시장’이 열렸다. 내년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새 아파트가 대량으로 쏟아지는 ‘입주 쓰나미’가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주택 보급률이 100%가 넘는 현재도 분양권에 프리미엄이 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택 보급률이 100%가 넘는다는 것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집이 남아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주택 보급률은 단순히 주택 수를 가구 수로 나눈 개념이다. 다 쓰러져 가는 폐가까지 포함된 통계라는 얘기다.

둘째 분양가가 인근 시세보다 현저하게 낮을 때 프리미엄이 발생한다. 2014년까지만 해도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됐기 때문에 그 당시 책정된 분양가로 분양하는 곳이 있다면 웃돈을 주어도 인근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다.

물론 최초 당첨자가 그 차액 전부를 취할 수도 있지만 일부가 그 분양권을 팔고 나오면서 분양권에 웃돈이 붙는 것이다. 또 다른 것은 부동산 시세 급등기에 나타난다. 분양부터 입주까지는 시간이 2년 이상 걸리고 분양가는 확정된 금액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인근 아파트의 시세가 급등해 분양가와 시세 차이가 발생하면 분양가에 웃돈이 발생한다.

셋째 분양권의 금융적 특성이다. 분양권에는 적든 많든 웃돈이 붙는 게 정상이다. 바꿔 말하면 분양권에 웃돈이 붙지 않으면 손해가 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신규 분양을 받으면 분양 대금을 나눠 내기 때문에 목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장점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 집에 먼저 입주하고 나중에 천천히 할부로 낼 수 있다면 장점이지만 돈을 먼저 내고 나중에 입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분양권에는 금융비용만큼의 웃돈이 붙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분양권에 웃돈이 붙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단지나 층, 향을 가진 아파트는 오히려 분양가보다 싸게 거래되기도 한다.

넷째 반대로 누구나 좋아하는 좋은 동, 좋은 층, 좋은 향을 가진 분양권은 수요가 몰리면서 프리미엄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분양권 투자는 적은 자본금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분양권은 반대로 위험도가 가장 큰 상품 중 하나다. 분양권 투자는 누군가가 자기가 산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사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없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계약금만 포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건설사 또는 시행사에서 제공하는 중도금 무이자 대출이라는 것이 단순히 완공 후 입주 때까지 돈을 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도금 무이자 대출이라고 하더라도 건설사(또는 시행사)가 중도금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분양 받은 사람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건설사(또는 시행사)에 대금을 완납한 것이고 그 대신 건설사(또는 시행사)가 그 이자를 은행에 대납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건설사(또는 시행사)가 부도가 나거나 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분양 받은 사람에게 돌아온다.

물론 과거 분양된 아파트는 언젠가는 값이 올라 분양가를 웃돌아 왔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은 잘못된 학습 효과일 수 있다. 더구나 그 당시 마이너스 웃돈이 형성된 곳도 있었지만 기억을 못할 뿐이다. 10년 전인 2006년 하반기에 주택 시장이 과열되면서 분양권 투자가 활발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부동산 경기가 급락하자 거래가 끊기면서 분양권 투자자들에게 악몽의 시절이 찾아왔다. 그중 일부는 대출로 분양 대금을 해결하기도 했지만 하우스 푸어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분양권 투자의 본질은 긴 줄이 늘어서 있는 빵 가게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보다 빵을 사서 나오는 사람에게 빵값의 두 배를 주고서라도 빵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확보된 빵을 배고프지만 인내심이 없는 실수요자가 높은 가격에 사주거나 또는 시세 차익을 노리고 또 다른 투자자가 비싼 값에 사줄 때 이익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자기 빵을 사주지 않으면 어찌될까. 본인이 먹으면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빵이 수십, 수백 개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분양권도 마찬가지다. 최악의 경우 잔금까지 치르고 본인이 그 집에 입주하거나 임대를 줄 생각이 아니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더구나 내년 말부터는 대형 빵 공장이 들어서 모두가 긴 줄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 비싸게 프리미엄을 주고 사 놓은 빵을 사 줄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주택 시장에서 공급과잉의 폭탄은 분양권 시장에서부터 터진다는 의미다.


내년부턴 입주 폭탄 터져



실제 내년 이후 전국적으로 새 아파트가 대량으로 쏟아지는 ‘입주 쓰나미’가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이후 쏟아진 신규 분양 아파트들이 2~3년간의 공사를 끝내고 준공되기 때문이다. 부동산114가 5월까지 분양된 전국 아파트의 입주 예정시기를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입주 물량이 내년 36만여 가구, 2018년 33만여 가구로 집계됐다.

단독·다세대주택까지 합치면 내년과 2018년 입주 주택이 각각 50만 가구를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예년보다 30~40% 많은 물량이다. 함영진 센터장은 “새 아파트 공급량이 갑자기 늘어나면 주택시장이 ‘소화불량’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는 집의 수요자인 가구보다 주택이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2018년까지 입주하는 전체 주택은 200여만 가구로 예상된다. 그러나 같은 기간 가구 수는 63만여 가구 증가하는 것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통계청).

2014년 말 기준 일반 가구 수 대비 주택보급률이 103.5%인 상황에서 입주 물량의 급증은 주택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의 ‘병목현상’을 우려한다. 정부와 주택산업연구원은 한 해 적정 주택 공급량을 33만~39만 가구로 보고 있다. 이를 초과하는 15만 가구 정도가 공급 과잉으로 남아돌아 ‘소화’되지 못하는 셈이다.

이런 소화불량은 입주 대란으로 이어진다. 입주 전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기 위해선 새로 전세를 놓거나 새 주택을 처분해야 하는데 물량이 많으면 이게 어려워진다. 이는 새 주택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잔금을 마련하려는 입주 예정자들이 기존 전세를 대거 내놓으면서 전셋값이 떨어지고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운 ‘역전세난’이 생길 수 있다.

잔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면 건설업체에도 영향을 준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연구위원은 “잔금(대개 분양가의 30%) 납부가 이뤄지지 못하면 주택건설업체의 자금난으로 이어진다”며 “현재 분양률이 높다고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건설업체에 부실이 생기면 은행 건전성도 악화된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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