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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운동 16년만에 경찰 고강도 수사 왜?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운동을 벌인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됐다. 시민단체들은 공권력 남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000낙선운동 시작 이후 전방위 수사…
오프라인 활동범위 규제 커
낙선운동 정파적 편향, 영향력 감소도 극복해야 할 과제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총선넷')는 12일 "19명의 시민단체 관계자가 3차에 걸쳐 경찰의 출석 요구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총선넷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는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의 출석요구서를 받은 사람은 박인숙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대표, 최창우 주거권네트워크 대표, 김명희 인천평화복지연대 협동사무처장, 강홍구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 김동규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대외협력국장, 김주호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김효선 매니페스토청년협동조합 대표,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유동림 참여연대 간사, 윤지민 집걱정없는세상 사무국장, 이단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집행위원장, 이명옥 장준하부활시민연대 운영위원, 김창곤 민주노총 인천본부장, 김정수 송파시민연대 대표, 정대화 상지대 교수 등이다. 앞서 경찰은 이재근ㆍ이승훈 총선넷 공동사무처장과 이광호 인천평화복지연대 사무처장, 안진걸 총선넷 공동운영위원장 4명을 불러 조사를 마쳤다.
이 외에도 3~4명이 추가로 출석요구를 받아 단체 측에서 파악 중이다.

경찰은 총선넷이 주관한 '낙선투어 기자회견'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두고 있다. 총선넷 관련자들이 낙선운동을 목적으로 집회를 열었고, 선관위에 사전에 신고하지 않고 설문조사를 빙자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또 확성기를 이용하고, 일부 후보자 이름이 들어간 현수막을 설치한 것도 선거법 위반으로 간주했다. 지난 6월 16일에는 서울 종로구의 참여연대 등 10여곳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앞서 서울시 선관위는 총선넷을 검찰에 고발했다. 총선넷이 집중낙선대상자로 선정한 총선 후보 35명과 정책 공약 38개 중 최악의 후보 10명과 최고의 정책 10개를 뽑는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 것도 사전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 여론조사로 판단했다. 특정 지역구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여론조사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의 인기투표 같은 설문조사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지는 해석이 분분하다.

시대 맞지 않는 유권자 운동 기준 개선해야

경찰이 총선 낙선운동을 벌인 시민단체를 겨냥해 전방위로 수사하는 건 낙선운동이 시작된 2000년 이후 16년 만이다. 낙천ㆍ낙선운동은 공직선거법이 보장하는 유권자 활동이다. 낙선운동 대상자 명단을 기자회견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하는 것도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후보자의 이름을 나타내는 사진, 벽보, 인쇄물을 배포하거나 현수막 설치, 집회ㆍ서명운동 등은 불법이다.

온라인에서의 활동은 비교적 관대한 반면 오프라인 낙선운동은 매우 엄격하다. 시민사회에선 이런 규정들이 구시대적이라고 꾸준히 지적해왔다. 낙천ㆍ낙선운동 자체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특정 후보자에게 불리하도록 하는 유권자 운동인데 선거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주장이다.

반면 후보 선정 기준에 대한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총선넷이 선정한 최악의 후보 10명은 모두 새누리당 소속이었다. 이 때문에 국민의 눈에는 총선넷의 활동이 비이념적 정치 참여가 아니라 정파적 운동으로 비출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과거처럼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총선넷이 선정한 낙선후보 35명 중 야당 소속 후보는 단 2명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새누리당과 범 여권이다. 또 대상자들 중 15명이 낙선했는데, 이 역시 당내 권력투쟁 등 다른 요인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총선넷은 오는 17일 출석요구 대상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의 출석 요구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낙천ㆍ낙선운동의 범위를 확대해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와 목소리를 높이는 방향으로 법률이 개정돼야 민주주의가 더 성숙해질 수 있다"면서도 "이념적이거나 특정 이슈가 유권자 운동을 좌우하는 것도 시민사회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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