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찔끔 인하에 들끊는 여론…과거 논의 들여다보니 '제도 개선' 약속은 공염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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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7~9월 한시적으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하기로 했습니다. 누진제의 근본적인 개편은 장기 과제로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찔금안은 애들 껌값도 못 한다”며 여름철 일시 완화가 아닌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국회에서 있었던 누진제 개편 논의는 어떻게 진행됐을까요. 국정감사 등에서 진행됐던 논의를 정리해보니 아래와 같습니다.

①여름에 폭염이 찾아온다→②누진제로 인해 전기요금 ‘폭탄’을 맞는다→③여론이 들끊는다→④국회에서 “누진제를 개선하라”고 정부에 요구한다→⑥정부에서는 “검토하겠다”고 답변한다→⑦그런데 정작 겨울이 되면 국회에서도 잊는다→⑧다시 여름을 맞이한다.

전기요금 누진제 문제가 국회에 등장한 건 2001년 9월 25일 산업자원위원회 국정감사였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이근진 의원 등은 “올 여름을 지내면서 많은 국민들이 전기요금 누진제를 의식해 찜통더위 속에서도 에어컨조차 제대로 켜지 못하는 고통을 겪었다는 불만을 토로했다”며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정부는 “누진제 개편은 현재 용역 중인 전기요금체계 개편 등에 반영하여 합리적인 요금체계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누진제 개선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입니다.

이후 매년 여름이 지나고 쌀쌀해진 10월에 열린 국감에서는 누진제 개선에 대한 요구가 계속됐는데요. 정부는 그 때마다 “검토하고 있다“고 답해왔습니다. 알다시피 누진제는 여전히 6단계, 누진배율 11.7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9대 국회가 시작된 2012년 국정감사부터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논의를 간략히 정리해봤습니다.

◇2012년10월 8일 지식경제위원회 국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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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새누리당 의원=“하절기에 퇴근해서 집에 가보면 극기훈련 하듯이 가족들이 에어컨을 틀지 않고 선풍기 1대 돌리면서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화가 많이 났다. 누진제를 언제까지 끌고 가실 생각이냐.”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사진)=“국제 기준에 비하면 너무 높다. 태스크포스를 마련해 종합적으로 검토 중인데 그 결과에 따라서 보완하겠다.”

◇2013년10월 14일 산자위 국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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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새누리당 의원=“당정 협의를 통해 10년 동안 끌어온 누진제 6단계를 2~3단계로 낮추겠다고 했는데 그 기조를 유지하면서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복지를 대폭 확대하는 요금 개편이 필요하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사진)=“전반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고 있다. 대체적인 방향은 의원님이 지적하신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씀 드린다.”

◇2014년 10월16일 산자위 국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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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현 새누리당)=“세계에서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유일한 폭탄이 뭐냐, 바로 전기요금 폭탄이다 이 말이지요. 이것 꼭 좀 개선해달라.”

▶조환익 한전 사장(사진)=“예. 인지하고 있습니다.”

◇2015년 9월10일 산자위 국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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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태 의원 “지난해 국감에서도 누진제에 대해 지적했다. 전기요금 폭탄 다 이런 표현을 쓰는데 개선해야 되지 않겠나.”

▶윤상직 산자부 장관(사진) “저희도 분명히 누진제 완화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상임위 차원에서 누진제 개편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2013년 2월 지경위 에너지소위에서 정부는 누진제 개선방안을 보고하며 “누진구간 및 누진율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누진제 완전 폐지 ▶누진제 대폭 완화(3단계, 누진배율 3배) ▶누진세 중폭 완화(4단계, 누진배율 8배) 등 3가지 시나리오도 제시했습니다.

소위에 출석한 조환익 한전사장은 “누진제가 너무 징벌적이고 실제 처음의 취지와 맞지 않는 운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나 한전이나 이것은 개선해야 된다는 공감대는 형성 돼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지경위 전체회의에 나온 홍석우 지경부 장관도 “‘누진제를 완화하겠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부담은 결코 늘리지 않도록 하겠다. 이 두 가지 원칙은 정해졌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논의는 흐지부지 됩니다. 1년이 지난 2014년 7월3일 국회 산자위 회의에서 이런 질의가 오가기도 합니다.

▶이현재 의원=”가정용 누진제 해결한다고 작년부터 했는데 금년 여름은 전기요금 폭탄 얘기 또 나오게 생겼는데, 언제 할겁니까?“

▶한진현 산자부 2차관=”가정용 누진제 문제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여기에 장을 마련해주시면….”

▶이 의원=”자꾸 국회 핑계 대지 말고, 작년부터 논의했잖아요. 그러면 금년 여름, 7, 8월에 전기요금 폭탄 얘기 또 나올 텐데, 그때 가서 또 국회가 협조 안 해서 그랬다고 핑계 댈 겁니까?. 조속히 입장 정리해주세요.“

논의가 흐지부지된 이유로 정부와 여당은 야당의 핑계를 되고 있습니다. 우태희 산자부 차관은 11일 세종청사 브리핑에서 “2013년에도 국회에서 개편안 논의가 있었지만 야당 의원들이 ’누진제 개편은 부자감세‘라고 유지하자고 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 2015년 6월 정부가 발전단가 하락 등을 이유로 7~9월 전기료에 한해 누진단계 4구간(월 301~400kWh)을 3구간과 같은 같은 요금을 적용하는 등 누진제를 일시 완화할 때 논의를 보면 이런 논의의 일부를 찾을 수 있는데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백재현 의원은 “개인적으로 누진제 적용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소득의 재분배 효과가 있다. 저소득층의 전기요금을 낮춰 주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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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진제 문제를 법으로 풀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새누리당으로 옮긴 조경태 의원은 18,19대 국회에서 누진제 완화를 위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제출합니다. 법으로 누진단계 3단계, 누진배율도 3배로 하도록 정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두 법 모두 상임위에서 논의되다 임기만료로 폐기됩니다. 18대 국회에서는 정부 측이 “누진제 등 전기요금 관련 사항은 법률안에 포함되기보다는 현행처럼 전기요금 약관에 규정하고 정부가 인가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냈고, 19대 때는 정부 측이 누진제 완화 효과 등을 분석한 후 결정하자며 법안 논의를 중단했습니다.

조 의원은 누진제가 다시 논란이 되자 같은 내용의 법안을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했습니다. 더민주 박주민 의원도 누진단계 3단계, 누진배율 2배로 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제출했습니다. 국민의당은 법으로 누진배율 등을 정할 경우 탄력성 등에 문제가 생긴다며 한전 약관을 바꿔 고치자는 입장입니다. 이미 지난달 29일 3당 중에는 최초로 누진제 개선안을 내 누진단계를 4단계로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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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이번 기회에 누진제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고삐를 죄고 있습니다 .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야당이 주장한것은 일시적 선심성 전기요금 깎아주라는것 아니다”며 “기본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 사이의 불균형, 모호한 원가체계, 복잡한 누진제도를 한꺼번에 손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찔끔안은 애들 껌값도 못 한다”며 “저희당에서 요구한 누진제 6단계를 최소한 4단계로 축소해서 가정용 전기요금을 대폭 인하해야된다는 것을 대통령께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국회는 물론 대통령까지 나선 이번에는 누진제 문제가 해결이 될까요. 아니면 다시 ①~⑧의 순번을 밟게 될까요.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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