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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북으로간 연예인들의 이야기|"김연실…당신은 반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북괴의 6·25남침이 휴전으로 마무리된 1953년 7월의 평양.
박헌영·이승엽·이강국등을 위시한 남로당 계열의 붉은 정치거물들이 김일성의 계획된 숙정의 칼을 맞았다.
서울에서 자진 월북했거나 강제 납치된 각계각층 유명무명의 수많은 사람들도 이 숙청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전전긍긍했다. 왕년의 명배우이자 최은희의 시누이인 김연실도 그 중의 하나였다. 김연실은 최은희의 첫번째 남편이었던 촬영기사 김학성의 누이였다.
그녀는 출신 성분부터가 불량하다 하여 「영화동맹」에도 가입시켜 주지않고 평양 선교리의 난민 땅굴 합숙소에 처넣어 두고 있었다.
불볕 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8월 중순의 어느날, 김연실은 「문학예술총동맹」(약칭「문예총」서기장 홍순철에게 소환되어 자백 심사를 받았다.『김연실동무는 아직도 남쪽 생각을 하며 옛날 일만 그리워 한다는데 그래서 되갔느냔 말이오! 더구나 동무는 당의 예술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데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는거요?』
북한의 모든문화예술인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시피한「문예총」서기장 홍순철은 김을 반당 불평분자로 몰아세웠다.『그건 오해이십니다』
김연실은 홍순철의 주장을 부인했다. 평양으로 강제로 납치해다 놓고 들들 볶아대니 미칠 지경이었다.
『뭐요 오해? 확실히 김연실동무는 우리 당을 깔보구 있구만!』
홍순철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그는 자꾸 묘한 눈길로 김연실의 아래 위를 더듬었다.
왕년에 김연실은 곧잘 모란꽃에 비유되던 복스런 모습의 미인이었다. 당시 비록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고 그동안(납북 이후) 고생으로 많아 여위기는 했지만 옛 미모는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김연실의 두눈이 동그래졌다. 『무슨 말씀이라니? 우린 절대로 비과학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소. 우선 동무의 지난 날 성분이 동무의 오늘을 증명하구 있지 않소!』
홍순철은 새삼스럽게 김연실의 출신 성분을 따졌다.
사실 김연실의 아버지는 일찌기 (1910년대) 관계에 투신하여 평양과 전라도에서 일제의 관리노릇을 했고 마지막에는 수원 군수까지 지냈던 것이다.
홍은 이어 김연실의 이른바 「사회성분」을 따지고 6·25때 고의로 반동행위를 자행했다고 몰아세웠다.
『김연실동무! 동무는 또 일제하에서 부르좌의 시녀격인 부화방탕한 신파 영화만 했던 배우가 아니오. 그리고 동무는 조국전쟁시기 우리 인민군대가서울서 후퇴할때 우리를 따른남조선의 많은 예술인들을 다시 남쪽으로 탈출하도록 방조한 엄중한 반동행위를 범했단 말이오!』
홍의 어조는 더욱 거칠어졌다.
홍은 1948년에 월북, 북괴 최초의 극영화 『내 고향』에 출연(1949년)한 문예봉을 진남포 모여관으로 유인, 욕심을 채우려다가 문예봉이 들이댄 비수에 기급을 한 적도있었다.
이 사건으로 홍은 문화선전성 부상자리에서 물러났으나 「문예총」 서기장 김남천 (남로당계)이 숙청되자 6·25휴전 직전에 그 후임으로 「문예총」서기장으로 재등용되어 많은 여자를 농락한 것이다.
김이 끝까지 홍의 비판을 부정하자 홍은「정치보위국」문화과 지도원 허준과 월북배우 심영·김선영등을 증인으로 불러냈다.
세사람은 모두 김과 그럴 사이가 아니였건만 자신들이 살기 위해 김에게 불리한 증언을했다.
그길로 김연실은 평양교외의 사동 반동분자 교화소에 수감되고 말았다. 납북된 연예인들 가운데 영화감독 이명우·최인규·방한준등도 이때 친일파 반동영화인으로 낙인 찍혀 안주탄광 노동직장에 배치되었다.
반면 공산당에 아부의 꼬리를 질 친 김선영·남궁련·이숙·문정복· 윤영애등 옛날 김연실의 후배 여배우들은 이른바 「국립대중예술극단」「방송예술극장」「내무성 예술극단」 「인민군 연극극장」 「2·8영화촬영소」등에 배치되어 혁명 영웅을 날조하는 꼭둑각시 임무를 담당했다. 1953년 여름의 일이다.
특히 발성과 구변이 좋은 김선영은 평양방송 마이크 앞에 고정배치되어 대남 비방방송 앵무새 역까지 말았다.
김연실은 교화소에 수감된 후에도 밤낮 없이 뻔질나게 홍에게 불려다니면서 이른바「정치교양 개인지도」를 받았다. 그로부터 약 반년후인 53년 겨울, 김연실은 교화소에서 풀려나 「조선예술영화촬영소」전속배우로 배치됐다.
이때를 전후해 『김연실이 홍순철의 정부가 되었다』는 소곤거림이 북의 여배우들 사이에퍼졌다. <이기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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