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2016] 조별리그서 2골 ‘온두라스의 손흥민’ 막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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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 나선 우리 선수들은 몸이 무거웠다. 권창훈(23·수원)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겼지만 전·후반 내내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끌려다녔다. 신태용(46) 감독이 준비한 전술의 문제라기보다는 ‘비겨도 8강에 간다’는 안도감이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나 또한 현역 시절에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경기에서는 나도 모르게 움직임이 줄어들곤 했다.

안정환 관전평
감독 스타일은 끈질긴‘좀비 축구’
감정 기복 심해, 초반부터 압박을

시원스런 경기는 아니었지만 매 경기 ‘내용’과 ‘결과’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긴 어렵다. 앞서 유로 2016에서 정상에 오른 포르투갈도 그랬다. 포르투갈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라는 걸출한 공격수 이외에는 경쟁자들을 압도할 무기가 부족했지만 매 경기 끈적한 경기를 펼친 끝에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잔뜩 움츠려 상대의 공세를 버틴 뒤 위력적인 카운터 어택 한 방으로 골을 노리는 방식은 근래 세계 축구의 주류 전략이기도 하다. 수비에서는 주장 겸 와일드 카드 장현수(25·광저우 푸리)의 리더십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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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노

8강 상대 온두라스는 우리가 역대 전적에서 2승1무로 앞서지만 역시나 만만찮은 상대다. 사령탑부터 고수다. 호르헤 루이스 핀토(64·콜롬비아) 감독은 2년 전 브라질 월드컵 당시 코스타리카의 8강 돌풍을 이끈 주인공이다. 당시 코스타리카는 우루과이·이탈리아·잉글랜드 등 쟁쟁한 강자들을 제치고 조 1위로 16강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다. 8강에서 네덜란드에 승부차기 끝에 석패했지만 인상적인 경기력으로 축구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당시 함께 중계한 김성주 캐스터가 코스타리카를 보고 “11명의 박지성이 뛰는 팀 같다”고 했는데 핀토 감독의 성향을 정확히 짚었다. 핀토의 축구는 뛰고 또 뛰고 쓰러져도 다시 뛰며 상대를 질리게 하는 ‘좀비 축구’다. 변화무쌍한 전략은 물론 선수들을 다독여 투쟁심에 불을 붙이는 능력도 탁월하다.

선수 중에서는 조별리그에서 2골을 넣은 공격수 안토니 로사노(23·테네리페)의 움직임이 좋았다. 지난 6월 우리나라와 치른 평가전(한국 2-2무승부) 당시에도 두 골을 넣은 선수다. A대표팀에서도 20경기 가까이 뛰었으니 ‘온두라스의 손흥민’이라 부를 만하다. 최전방과 측면을 부지런히 오가는 공격수 알베르스 엘리스(올림피아)도 요주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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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부터는 벤치 싸움이다. 조별리그 3경기씩을 치르며 장·단점이 모두 드러난 만큼 우리의 강점은 살리고 상대의 특성은 무력화 할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온두라스 선수들은 체력과 기술이 뛰어난 반면,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경기 초반부터 강한 압박을 통해 상대의 심리를 자극할 필요가 있다.

메달권에 진입하려면 앞으로 2승이 더 필요하다. 특히나 8강전은 무조건 이겨야 그 이후를 바라볼 수 있다. 선수 시절에도, 지도자로 변신한 이후에도 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가득한 신 감독이 남은 기간 ‘좀비 축구 공략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리우에서.

정리=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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