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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상주 옛 영광 재현할 '영호남 역사복원 프로젝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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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전남 나주(羅州)시 서내동 주택가. 최근 복원이 완료된 서성문을 중심으로 200여 채의 주택과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30~40년 전에 지어진 낡은 건물들 곳곳에는 페인트칠이 벗겨지거나 외벽이 파손된 채 방치된 집들이 많았다. 오래된 주택들 인근에는 무너져 내린 옛 성곽의 벽돌들이 쌓여있어 이곳이 옛 역사유적지임을 짐작하게 했다. 조선시대에 나주읍성(邑城)의 대표적 주거지였으나 오랜 시간 방치되면서 구도심으로 전락했다.

조선시대 전라도· 경상도 대표하던 나주와 상주
일제시대·개발독재 지나면서 군소도시로 추락
영호남 '나상동맹' 맺고 옛 영광 되살리기 나서

#같은날 경북 상주(尙州)시 서성동 서문로터리 부근에는 상주에서 가장 높은 7층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시내 중심에서 불과 5분을 나가도 논과 감나무가 곳곳에 보인다. 흰색인 쌀·누에고치(비단)·곶감이 많이 난다고 붙여진 '삼백(三白)의 고장'의 면모를 도심에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상주는 아직 농업중심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시골처럼 5일장이 서면 농산물을 들고 나와 옷을 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 사람뿐 아니라 번성했던 도시도 늙는다. 사람이 모여야 도시가 살고 사람이 떠나면 도시도 쇠락한다. 상주와 나주는 고려시대에 지방행정단위인 ‘목(牧)’이 설치됐고 조선시대에도 8도(八道)에서 손꼽는 중심도시였다. 경주와 함께 상주는 경상도를 대표했고 경상감영(監營)이 200년간 있던 곳이다. 전주와 함께 나주는 전라도를 대표했다.

하지만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지난 100년간 두 도시는 발전의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소외돼왔다. 상주는 조선시대에만 해도 한반도의 남북 중추도로인 영남대로(부산 동래를 출발해 상주를 경유해 현재의 서울인 당시 한양까지 380km)가 지나가면서 번성했다. 하지만 일제시대인 1904년 경부선 철도가 부산∼대구∼구미∼김천∼대전으로 돌아가면서 상주는 소외됐다. 경부고속도로도 경부선 철도를 따라 1970년 개통되면서 상주는 혜택을 받지 못했다.나주는 1896년 전남도청이 광주광역시에 신설되면서 급격히 쇠락했다.

◇ 나주와 상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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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0년 인구는 조선시대『호구총수』 자료 기준

인구 변화를 보면 나주와 상주의 퇴조 현상이 선명해진다. 조선시대 규장각이 발간한 『호구총수』에 따르면 1800년께 조선의 총인구(670만명)에서 나주(5만800명)는 0.87%를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 남북한 인구(7653만명) 대비 나주 인구(10만600명) 비율은 0.13%로 추락했다. 약 6분의1로 줄었다.

이정호 영산강문화연구센터장(동신대 교수)는 "나주는 한때 8만7000명까지 인구가 줄었으나 2014년 한국전력과 한전KDN 등이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에 입주하면서 지난 4월 간신히 10만명을 회복했다"며 "그나마 인구 10만명은 전라도에서 9번째 수준이어서 과거의 중심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주의 경우는 1800년 1.12%(7만5000명)에서 올해 0.12%(10만2012명)로 줄어 8분의1 수준으로 더 심하게 쪼그라들었다. 예로부터 뽕나무가 많았던 상주의 몰락상은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연상케 한다.

이런 아픔이 있는 두 도시는 지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나주와 상주의 제휴, 즉 '나상(羅尙)동맹'이다.

두 도시에서는 낙후된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작업이 진행중이다. 나주와 상주를 함께 복원하는 '영호남 지명유래 고도(古都) 전통문화 자원화사업'이다. 두 고을의 입지를 되찾아가는 사업이다. 두 도시는 내년부터 5년간 400억원씩 모두 800억원을 투입해  중심지를 복원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지난달 22일부터 기획재정부가 국비지원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역사복원의 핵심은 두 도시의 옛 위용을 되살리는 데 있다. 옛 성문부터 성벽·성안 모습, 옛길 등이 복원된다. 나주는 1980년대부터 진행된 성곽 복원사업지 안팎에 다양한 역사적 콘텐트를 접목시킨다. 우선 '관찰사 행로' 같은 옛길을 복원·정비하는 데 약 100억원을 투입한다. 현재 목사 고을인 나주에서 목포·함평·강진 등으로 관찰사가 순행을 나갔던 길이 복원된다. 약 2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성문 안팎의 경관도 대대적으로 손질한다.

상주시는 기본적인 성문 복원을 중심으로 사업을 한다. 사업비의 절반인 220억원을 들여 북문인 현무문(玄武門)과 읍성 벽을 재현한다. 상주의 옛모습을 보여 주는 경상감영문화전시관 등을 설립하는 데는 120억원이 투입된다. 두 도시에는 상징물을 세우고 4대문 터를 잇는 길은 야간조명 등을 활용해 옛 정취가 묻어나도록 꾸민다.

역사복원 사업은 2013년 9월 상주시가 '상주 문화융성을 위한 시민모임'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경상도'란 이름의 뿌리인 상주의 낙후성을 개선하자며 전라도·충청도·강원도의 지명유래 도시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게 시작이다. 그 결과 전주·충주·청주·강릉·원주 등은 모두 인구가 20만명이 넘는데 유독 나주가 상주와 비슷한 9만명 정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2014년 8월 두 도시가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사업이 급물살을 탔다.두 도시의 인연은 후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상주에서 태어난 견훤이 900년에 후백제를 세운 뒤 가장 공들여 지키려던 지역이 나주인 금성(錦城)이다.

이정백 상주시장은 "200년 가까이 존속된 경상감영을 복원하면서 국토의 중심인 이점을 살려 전국 어디서나 찾아오는 힐링과 친환경농업의 수도로 옛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말했다.
강인규 나주시장은 "쇠락한 도시 이미지 대신 천년 목사골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공동 역사복원과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나주·상주=최경호·송의호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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