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새로운 한·러 관계 열 정상회담을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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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2∼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되는 제2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결론부터 말해 잘한 결정이며, 이번 회담을 계기로 보다 가깝고 실질적으로 협력하는 새로운 한·러 관계를 기대해 본다.

사실 우리는 한반도 주변 4강 중 러시아를 비교적 소홀히 대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문화적 이질감이 다소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의 갈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우리의 외교적 여력이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는 우리에게 더욱 크게 다가온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러시아는 북한의 핵 도발과 이로 인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결정으로 꼬인 한·중 관계의 비상구가 될 수 있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긴 하지만 러시아는 북한의 핵 무장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중국에 비해 훨씬 비판적인 입장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에 대처한 우리의 불가피한 선택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면 충분히 협조를 얻어낼 수 있다. 러시아가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 수위도 낮아질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중요성도 안보 문제에 못지않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극동 지역을 개발하는 신동방정책을 최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대러 제재로 유럽 쪽 통로가 막힌 상황에서 극동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발현된 것이 곧 동방경제포럼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 일대 15개 항구를 자유항으로 지정하고, 10개 선도개발구역(TOR)까지 열어 한국과 일본 등의 투자를 기다리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번 포럼에 참석하는 것도 이 지역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관심은 지나칠 정도다. 이 지역을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출발지로 선포한 중국은 훈춘까지 완공된 철도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중국 지린성 당국은 2018년을 목표로 자루비노항을 연간 물동량 처리능력 6000만t 규모의 다목적 항만으로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진출이 활발하다 보니 극동러시아의 먹거리는 이미 중국 농산물이 장악한 상태다. 위기감을 느낀 러시아는 한국과 일본에 손을 뻗고 있다.

우리도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단독 또는 합작투자를 통해 극동러시아의 지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극동러시아 투자는 궁극적으로 북한과 상생을 위한 출구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북한 도발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었지만 제재 국면이 해소된다면 중단된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재개해 나진을 동북아 교역 허브로 만들고, 극동러시아 가스관을 유치해 중·일·러·남·북이 참여하는 동북아 에너지 거점도시로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