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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으로 뭉치는 비박, 친박은 ‘이정현 몰아주기’ 시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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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호 6 면

새누리당 8·9 전당대회를 앞두고 6일 열린 수도권 합동연설회에선 비박계의 당 대표 단일화에 대한 친박계 후보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당 대표에 출마한 이주영ㆍ주호영ㆍ한선교ㆍ이정현 의원(맨 왼쪽부터). [뉴시스]

6일 오후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수도권 합동연설회에서 김희옥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입장하고 있다. 왼쪽은 정진석 원내대표, 오른쪽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 [뉴시스]

8·9 전당대회를 사흘 앞두고 6일 오후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수도권 합동연설회는 전날 성사된 비박계 후보 단일화가 최대 이슈였다.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2000여 명의 당원이 모인 가운데 각 후보 진영이 열띤 유세 경쟁을 벌이면서 장내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비박계 최종 단일 후보가 된 주호영(4선·대구 수성을) 의원은 후보 단일화 파트너였던 정병국(5선·여주-양평)·김용태(3선·서울 양천을) 의원과 함께 연설회장에 입장하며 기세를 올렸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주 의원은 “어떤 후보님은 총선 참패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며 “잘못도 없는 사람이 왜 같이 (총선 참패) 책임을 져야 하나. 총선 참패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여러분들은 다 아시죠”라고 친박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지난 4년간 수없이 지역을 다니며 고생하고 밤잠을 안 자고 숨소리도 조심하며 살아왔는데 공천파동이라는 오만한 행동, 막말, 친박 감별 등이 (당을) 몽땅 망친 것 아니냐”며 강도 높게 친박계를 공격했다. 그는 총선 당시 자신이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당선된 경력을 거론하며 “저는 계파에서 자유롭고 중립적인 사람이다. 특권을 없애고 간절히 국민의 삶 속으로 다가가 변화의 혁신을 하려면 공천에서 탈락한 제가 바로 당 대표가 되는 드라마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로 단상에 오른 이정현(3선·순천) 의원은 비박계 단일화를 비판하는 데 상당 시간을 썼다. 이 의원은 자신이 과거 호남에서 선거운동을 할 때 썼던 모자와 넥타이를 들고 나와 “이걸 쓰고 다니면서 한 번만 당선시켜 달라고 애걸복걸했었다. 그런데도 상대 후보들이 그때마다 단일화를 하는 바람에 여러 번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여론조사에서 1위로 나오고 있는데 이번에도 또 (비박계가) 단일화한 상대를 맞이하게 됐다. 당원 여러분이 한 번만 도와달라. 저는 국민만 바라보고 정치하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해방 이래 최초로 보수 정당에서 호남 출신 대표가 나온다면 그 다음 날 신문 제목이 어떨지 상상해 보시라.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이 됐다고 국민들이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이 당 대표에 당선될 경우 “호남 출신 유권자의 20%를 끌어올 자신이 있다”고 장담했다.


이주영(5선·창원 마산합포) 의원은 더욱 강도 높게 비박계 단일화를 공격했다. 그는 김용태·정병국 의원의 이름을 거론하며 “정말 마음이 아프다. 당의 큰 자산인 이분들이 단일화 유령에 희생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 4일 밤까지 단일화를 거부했던 주 의원을 겨냥해 “겉으로는 그렇게(단일화하지 않겠다) 말하고 뒤로는 계파 수장의 조종에 따라 단일화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지목한 비박계의 수장은 김무성 전 대표다. 이 의원은 “혁신을 말하면서 반혁신하고 있는 후보들을 우리가 심판해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며 “(김 전 대표의) ‘오더 정치’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오더 정치야 말로 반협치의 표본”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같은 친박계 이정현 의원을 향해서도 “이번 전당대회에서 집권여당의 대표다운 당 대표를 뽑아야지 무슨 인기투표 하는 게 아니다”고 견제구를 던졌다.


마지막 연사인 한선교(4선·용인병) 의원은 ‘당 대표 경선에선 비주류 단일 후보 기호 4번 주호영에게 투표하라’는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꺼내 들었다. 그는 “정말 이번엔 변화와 혁신이 되는 줄 알고 출마했는데 특정 후보를 미는 특정 계파의 문자가 돌고 있다”고 폭로했다. 취재진 확인 결과 이 메시지는 박성중 의원실에서 뿌린 것으로 드러났으며 박 의원은 김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로 분류된다. 한 의원은 “이는 특정 후보를 지지해 그 후보를 앞세워 상왕정치를 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 아니냐”며 “이런 일을 획책하는 제일 위에 계신 분들이 새누리당을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최고위원에 출마한 함진규 의원도 직접 문자메시지가 프린트된 종이를 흔들며 “위로부터 특정인에게 찍으라는 이런 문자를 보내는 것이 당내 민주화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선 막판에 ‘오더 정치’ 논란이 촉발되면서 각 후보 진영의 추가 폭로가 이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전날 주호영 의원과 정병국 의원의 후보 단일화에서 주 의원이 승리하며 새누리당 대표 경선은 ‘친박 3(이정현·이주영·한선교) vs 비박 1(주호영)’ 구도로 바뀌었다. 그 뒤 이정현 의원은 언론을 통해 “상황 변화가 생겼으니 단일화는 하면 하는 것”이라고 다른 친박 후보들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이 의원이 1위를 기록해 왔기 때문에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이주영·한선교 의원은 거기에 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날 연설회에선 각자 단일화를 거부하는 발언을 했다. 이주영 의원 측 관계자는 “부산·경남(PK) 지역 당원 숫자가 전체(34만7500명)의 25%나 되고 이정현 후보 지역인 호남은 4%밖에 안 된다”며 “지역별 당원 비율을 감안해 지지율을 집계하면 우리가 1등 후보가 될 텐데, 굳이 단일화에 응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친박계 중진들이 나이나 선수(選手) 면에서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가 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친박계 최다선인 서청원 의원이 이주영 의원을 민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선거 득표수 반영 비율 30%를 차지하는 일반 국민 여론조사는 7일부터 시작해 응답자 3000명이 채워지면 종료된다. 이 때문에 친박계 단일화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공식적인 후보 단일화가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한쪽에 표를 몰아주는 전략이 불가피하다. 지난 5일 천안에서 열린 충청권 합동연설회 이후 충청권 친박계 의원들이 따로 회동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자리에선 “이정현 의원에게 표를 몰아주자”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전국 당원 중 충청권의 비중은 약 10%에 이른다. 당내에선 “청와대 정무라인이 비공식 채널을 동원해 이정현 의원을 밀고 있다”는 루머도 나돌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전당대회엔 중립”이라며 개입설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또 과거와 달리 친박계의 응집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친박계 의원은 “섣불리 계파 활동에 관여했다가 친박 꼬리표를 달게 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하는 기류도 있었다”고 전했다.


반면 비박계는 후보 단일화가 성사된 만큼 주 의원에게 총력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수도권 지역의 한 비박계 당직자는 “총선 패배 책임론 때문에 친박에 대한 비판 여론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단일 후보 기회까지 얻은 주 의원이 떨어진다는 건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주 의원의 지역구가 대구라는 점도 비박계가 승리를 예상하는 이유 중 하나다. 대구 지역 당 관계자는 “친박에 우호적인 당원이 많은 대구·경북(TK) 지역이지만 주 의원의 영향력 때문에 상당한 표가 비박으로 옮겨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수도권 출신인 정병국·김용태 의원이 레이스에서 중도 하차하면서 최대 표밭인 수도권(35% 비중)의 비박계 표가 분산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주 의원 측은 “수도권 당원들은 ‘친박 패권주의’ 때문에 4·13 총선에서 패배했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 의원이 대구 출신이라고 해서 외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박계도 불안요소가 없는 건 아니다. 당초 정병국·주호영 의원 단일화는 대부분 정 의원의 승리를 예상했다. 애초에 후보 단일화를 줄기차게 요구한 쪽도 정 의원이었다. 주 의원이 정 의원을 누르는 이변이 벌어진 건 당초 비박계 핵심부의 시나리오엔 없던 내용이다. 심지어 5일 오후 일부 언론은 최종 단일화 후보가 정병국 의원으로 결정됐다고 오보를 날리기도 했다. 주 의원이 인지도 면에선 이정현·이주영 의원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남은 기간 주 의원이 ‘비박계 단일 후보’로서 존재감을 얼마만큼 발휘할지가 관건이다.


김무성 전 대표가 요즘 지방을 돌면서 계속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도 변수다. 김 전 대표는 지난 3일 광주광역시에서 “우리는 민주적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니라 제왕을 뽑고 있다. 다 마음대로 하니까 진 쪽에는 아무것도 돌아오는 게 없다”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이 TK 지역 초선 의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면담(4일)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당대회를 앞두고 특정 지역 의원들을 만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친박계로부터 “짝퉁 배낭여행을 하며 전당대회에 개입하는 것은 전직 당 대표로서 할 일이 아니다”(이장우 의원)라는 공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비박계 입장에선 박 대통령과 TK 의원의 면담은 차라리 무시하는 게 좋았을 텐데 공연히 김 전 대표가 거칠게 공격하고 나오면서 오히려 TK 지역에서 ‘박심(朴心)’의 영향력을 키워준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최선욱 기자, 이우연 인턴기자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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