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연루 공무원 사살" 두테르테 경고 다음날 현직 시장 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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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안에 자수하지 않으면 보는 즉시 사살하겠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사진)이 지난 1일(현지시간) 마약 매매 혐의를 받는 현직 시장에게 한 경고다. 장본인인 필리핀 중부 레이테주의 시장인 롤란도 에스피노사가 엄포 하루 만인 2일 오전 경찰에 자수했다고 필리핀통신(PNA)이 보도했다.

경찰은 앞서 지난달 21일 잠입작전 끝에 에스피노사의 자택 근처 테니스장에서 에스피노사의 경호원 2명과 직원 3명을 체포하고 190만 페소(4490만원) 상당의 마약을 압수했다. 에스피노사와 함께 자수 ‘협박’을 받은 아들 커윈은 여전히 도주 중이다.

그간 마약과의 전쟁을 벌여온 두테르테는 전선을 사회 지도층으로 확대하고 있다. 에스피노자의 경우처럼 마약 거래를 통해 번 돈이 지역 정계로 흘러들어가는 폐단을 뿌리뽑겠다는 것이다. 지난 6월 말 취임을 앞두고 “주지사 등 최소 35명의 지방 관료가 마약 매매에 연루됐다“고 언급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달 5일엔 전·현직 경찰 고위 간부 5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어 에르네스토 아벨라 대통령궁 대변인을 통해 “보는 즉시 사살하겠다”는 엄포로 고위층 혐의자들을 옥죄었다.

두테르테는 취임 이전부터 “마약 사범은 죽여도 좋다”며 마약 근절 의지를 보여왔다. 실제 6월 30일 취임한 이후 한달 간 11만명이 넘는 마약 관련자가 자수했고, 3000 여명이 경찰에 체포했다. 체포 과정에서 사살한 마약 용의자도 300명이 넘는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당장 수감 시설이 부족해지자 800명 정원의 교도소에 3800명을 수용해야 할 정도가 됐다. 수감자들이 잘 곳이 없어 계단까지 빼곡하게 누워있는 현지 교도소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즉결 처형된 마약 사범이 길가에 방치되는 상황까지 생겼다. 휴먼라이프워치 등 전세계 200여개 비영리기구는 UN 마약범죄사무소 등 국제사회에 “마약사범에 대한 즉결 심판과 처형이 급증하는 걸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정종문 기자 pers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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