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계종, 완고한 민족주의에 한국불교 세계화 기회 놓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기사 이미지

현각 스님

하버드대 출신 ‘푸른 눈의 수행자’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에 대한 실망감을 쏟아낸 파장이 크다. 참된 나를 찾아 이역만리에 온 외국인 수행자에게 문을 닫아건 조계종의 폐쇄성이 도마에 올랐다. 차제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어제 본지에 영문 e메일 보내와
“조계종 떠난다 안 해, 뉘앙스 오해
오래전 이뤄져야할 토론 자극한 것”
작년 4월엔 외국인 행자 고충 토로
“한국어 1급 요구는 우물 안 개구리”
조계종 측 “아직 우리의 의견 없다”

그리스에 체류 중인 현각 스님은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대를 떠나는 외국인 교수 기사를 링크하며 “지난 2~3년간 7~9명의 외국인 승려들이 환속했고 나도 요새는 내 유럽 상좌(제자)들에게 조계종 출가 생활을 절대로 권하지 못한다. 주한 외국인 스님들은 오로지 조계종의 데코레이션(장식품)”이라는 글을 올렸다.

한국 불교의 기복성도 비판했다. 한국 불교를 해외에 알리는 데 앞장 선 스승 숭산(1927~2004) 스님이 세운 “혁명적인 화계사 국제선원을 해체시키고…열린 그 자리를 기복 종교로 만들었다. ‘기복=$(돈)’. 참 슬픈 일”이라며 “8월 중순이 한국에 대한 마지막 공식 방문이 될 것”이라고 썼다.

파장은 컸다. “현각 스님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 이토록 고통받는지 몰랐다…포용보다는 보수적 입장을 고수하는 (한국) 불교계의 현실이 안타깝다” “한국 조계종은 폐쇄적인 곳이다” 등 현각 스님의 입장을 옹호하는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스님의 심정 절대 공감한다”는 한 스님의 댓글도 올라왔다. 여론이 집중되면서 31일 현재 원 게시글은 내려진 상태다.

현각 스님은 지난해 4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외국인 행자들이 ‘한국어 능력시험(TOPIK) 1급’을 취득해야 스님이 될 수 있는 등 비현실적인 제도가 출가의 꿈을 가로막고 있다”며 “조계종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격한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조계종은 외국인도 스님이 되면 불교 의식을 집행해야 하니 한국어를 알아야 하고 외국인에게 유리한 시험 조건을 만들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외국인 출가자 중 상당수가 미국·유럽·아시아 등지의 대학에서 이미 4년 이상 교육을 받은 엘리트로 영어 외에도 스페인어·프랑스어 등 제2·제3 외국어에 능통한 경우가 많아 조계종이 지향하는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위한 인적 자산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각 스님은 당시 인터뷰에서 “스승인 숭산 스님께서는 당신네 절집 문화보다 ‘저의 화두’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다. 스승이 그립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신행단체인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인 우희종(서울대 교수불자 모임인 ‘불이회’ 회장) 교수는 “최근까지 현각 스님과 e메일을 주고받았다. 대부분 공감한다”며 “2년 전 불교계의 대표적 선승인 송담 스님(인천 용화선원)이 조계종을 떠났다. 현각 스님은 한국 현대 불교 국제화의 상징적인 존재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계종 측은 말을 아끼고 있다. 정유탁 조계종 홍보팀장은 31일 “현각 스님이 개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공식적으로 종단과 그런 부분이 있는 게 아니어서 아직 이 사안에 우리의 의견이 없다”고 밝혔다. “외국인 행자와 관련된 부분도 스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원과 얘기를 나눠보고 있으나 아직 특별한 입장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각 스님은 31일 본지에 영문 e메일을 보내 “나는 조계종이나 한국 불교를 떠난다고 한 적은 없다”며 “(자신의) 말의 뉘앙스가 완전히 오해됐다”고 전했다. 자신이 게시글을 쓴 것은 “현재 종단의 상태에 대해 이미 오래전에 이뤄졌어야 할 토론을 자극”하고 앞으로 “한국에서의 교육” 대신 “서양에서의 명상에 큰 관심을 집중하겠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조계종과 한국 불교에 대한 쓴소리를 거두지는 않았다. 현각 스님은 “내 스승은 한국에서 서양 수행자들의 역할이 조계종단을 개혁하고 현대화하는 대화지향적인 문화를 가져온다고 열정적으로 믿었다”며 “조계종의 교육은 달마의 가르침과 기술에 대한 독특하고 귀중한 그릇”이라고 썼다.


▶관련기사
[단독] 현각스님, "조계종과 한국 떠난다고 한 적 없다"
② 눈물 글썽인 '푸른 눈의 수행자'···현각은 왜?



하지만 “불행히도 정치와 극단적으로 완고한 민족주의 때문에 현재 조계종의 방향은 그 기술을 세계에 전하는 귀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한국의 승려와 재가불자는 이 개혁을 스스로 이뤄야 할 필요가 있는데, 순응의 문화가 이를 실행하는 걸 막고 있다”며 “과도한 순응(hyper-conformity)은 한국 승려의 독특한 질병”이라고 표현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