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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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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른 아침 칠라스에서의 조사활동에 이어 가파른 산길을 3시간 반이나 달려 왔으니 피곤하기도 했다. 조사단원들은 휴식을 취하는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나는 호텔의 안내원에게 부탁해 지프 한대를 주선해 달라고 했다.
고선지장군의 유서 깊은 격전지인 달코트까지 가기에는 이미 시간이 늦어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르는바 아니다. 그러나 아직 4시도 채 못됐는데 호텔에 누워있기엔 너무도 시간이 아까왔다. 우선 현장을 밟고싶었다.
기르기트의 거리와 기르기트강을 보고싶었다. 강을 따라 뻗어있는 달코트가도와 그 부근에 있다는 마애불상과 30년 전에 백화나무껍질에 쓰여진 법화경이 발견됐다는 옛절터도 가봐야 했다.
지나칠(?)정도로 의욕을 보이는 내 행동이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단원들을 숙소에 남긴채 정명호교수와 함께 차로 기르기트시가 쪽을 향해 출발한 것은 오후4시 정각.
우측으로 기르기트강이 흐른다. 비늘과 같이 겹겹으로 둘러싸인 산과 산. 시가지로 향하는 차속에서 내나름 대로 기르기트의 거리를 그려본다.

<통치자는 바뀌어도 변함없는 교통요충>
고선지장군보다 약20년 먼저 이곳을 거쳐간 혜초는 그의『왕오천축국전』에 적기를 이곳은『빈한한 사람이 많고 부자는 적으며 산천이 비좁아 밭이 많지 않다. 산은 메말라 수목이나 풀이 전혀 없다』고 했다.
이같은 사정은 카라코룸 하이웨이를 달리면서 줄곧 느껴왔기에 단지 기르기트만의 지나친 혹평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됐다.
그러함에도 기르기트는 그 서북의 달코트 고개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소련·중공과 이어지고 동북으론 훈자를 거쳐 아득한 예부터 동서교통의 요충지인 중공의 타시쿠르간(탑십고이간)과 신강생의 생도인 우룸치(오노목제)까지 이어지는 비단길과 맞닿는다.
또 서남으론 우리가 거쳐왔던 칠라스·베샴·탁실라 등을 거쳐 페샤워르(간다라)에서 카이발고개를 넘으면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과 페르시아로 이어지고, 동남으론 북인도의 캐시미르를 거쳐 갠지즈강으로 나와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세계교통의 요충지인 것이다.
교통로는 예나 지금이나 교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뿐 아니라 문화의 교류와 군사 국제정치에도 커다란 역할을 한다.
목숨을 걸고 불법의 진리를 찾아 나섰던 혜초에 이어 고선지장군 또한 험난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의 와캉(호밀국)을 거쳐 달코트 고개를 넘어 기르기트까지 진격했던 사실에서도 이 지역이 지니고 있던 문화·군사면에서의 역사상의 위치를 바로 알 수있다.
시대가 바뀌고 통치자가 교체돼도 기르기트가 차지하는 경제·정치·군사상의 위치는 변함 없었다.
영국의 통치시대 때도 기르기트는 북부파키스탄의 정치 행정의중심지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무역과 생의 행정중심지다. 기류관계로 결항이 잦다고는 하나 국내선 공항까지 갖추고 있다고 하니 누구라도 기르기트는 고색창연하면서도 차분하고 세련된 도시경관이 갖춰진 산속의 소도시라고 상상해봄직 하지 않을까.
그러나 차가 기르기트의 번화가로 들어감에 따라 내가 그렸던 이 도시의 모습은 조각조각 깨지고 말았다.
시내의 한쪽으로 활주로가 있고 그옆의 시골역 같은 빈약한 건물이 공항이었다. 이 공항앞으로 꾸불꾸불 길게 뻗어나간 도로의 양쪽으로 단층의 목조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 20∼30년 전의 우리나라 군청소재지를 연상케 했다.
시의 중심부에 높이 솟아있는 회교사원만이 돋보일 뿐 인구 4만명정도의 산간 소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파키스탄 국적임엔 틀림없으나 인도아리안·이란·터키·그리스서장족으로 보이는 여러 종족이 특별히 할 일도 없다는 표정으로 그 비좁은 거리를 쏘다니는 모습이 구경거리라고 할 수 있을는지. 그러나 그 많은 인파속에서도 카라코룸하이웨이의 다른곳과 마찬가지로 이 도시 또한 여자라고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완전한 남자의 도시였다.

<인구4만의 소도시|회교사원만 돋보여>
풍기는 몸냄새부터가 그리스인임을 알려주는 운전기사는 그의 조상이 일찌기「알렉산더」 대왕의 점령이후 이곳에 정착했다고 가계의 내력을 들려주며 차를 몰았다. 밀리는 인파를 뚫고 시내에서 빠져나온 것은 하오5시쯤.
물줄기가 달코트 고개에서 모아져 남으로 흘러 내려와 인더스강과 합류하는 기르기트강과 다시 만난다. 『당서』「고선지전」에 바로 고선지장군의 최대 격전지로 적혀있는 사이하다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저물어가는 햇볕을 받아 강물은 자색으로 빛나고 물살은 완만해 보였다. 한때 동아시아의 군사와 정치의 판도를 바꾸는데 영향을 미쳤던 역사의 현장임이 되새겨져 잠시나마 인류사의 흥망성쇠와 고금의 변천을 생각해보게 한다.
기르기트에서 달코트까지는 기르기트강을 따라 서북으로 뻗어있으나 8차선에 가까운 넓은 이 길은 얼핏보아도 최근에 닦은 새도로지 옛길 같은 맛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포장이 돼있지 않아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나 타는 사람이 모두 고통스러웠다.
하늘을 찌르며 앞을 가로막듯 솟아오른 만년설의 산속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나가듯 15㎞정도를 달리다보니 바로 왼쪽에 이길과 평행으로 달리는 조그만 길이 보였다. 낡은 마을을 뚫고 기르기트에서 달코트 고개로 이어지는 꼬부랑길이다.
바로 이 길이구나. 그 옛길이 틀림없어 나도 모르게 차에서 뛰어내려 달려가 그 길을 밟았다. 사방을 살펴보면서 잠시 헤아리기 힘든 감회에 젖어 들었다. 달코트 고개를 넘어 기르기트로 진격한 고장군은 반드시 내가 지금 밟은 길 위에서 만군을 호령하며 달렸을 것이다.
날이 저물어 더이상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 옛길을 따라 기르기트로 되돌아 오기로 했다. 얼마 달리지 않아 지프는 기르기트가도를 벗어나 좁고 가파른 산길을 기어가다시피 올라간다.
바로 마애석불과 백화나무껍질에 쓰여진 법화경이 발견됐다는 절터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인기척이 전혀 없는 산골짜기의 다리위에서 차를 세운 운전기사가 거기서도 수백미터 올라간 계곡건너편 산위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석불을 가리킨다. 어둠속에서 겨우 그 형태만을 볼 수 있었으나 플래시를 터뜨려도 사진이 찍힐는지는 의문이었다.
법화경이 발견된 옛절터도 그 부근이라고 하나 시간이 없어 발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차를 세워두었던 돌다리의 그좁은 길은 다리를 지나서도 험악한 산골을 따라 한없이 뻗어 있었다. 기르기트에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지대에 있는 치트랄(혜초의 구위국) 로 가는 지름길 같았으나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인도양기류가 역류|영하10도 안내려가>
그것이 확실하다면 이 험악한 산골짜기의 비좁은 꼬부랑길 또한 고장군의 발자취가 서린 곳이 아닌가.
기르기트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기사로부터 교과서에서도 배우지 못한 귀중한 사실을 알았다. 『매우 더워하시는 것 같은데, 이곳의 기후는 겨울에 가끔 영하의 날씨가 되기는 하지만 영하5도 이하로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인도양이나 남부인도에서 형성된 기류가 카라코룸과 힌두쿠시 등 인도대륙의 동북부와 서북부를 병풍같이 가로막고 있는 큰산맥에 가로막혀 역류하는 현상을 일으켜 훈자와 같은 해발2천m가 넘는 곳에서도 영하10도를 넘는 일이 없답니다.』
사방에 흰눈이 덮인 험준한 산간도시인 기르기트임에도 우리 숙소의 뜰앞엔 12월 하순인 지금 장미꽃이 만발하고 감귤이 탐스럽게 열려 있는 이유를 알만했다.
그보다도 카라코룸의 골짝마다 틀어박힌 크고 작은 부락과 도시가 우리 눈으로 봐선 사람이살 수 없는 버려진 땅 같았으나 모두가 나름대로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자연의 혜택을 받아 아득한 예부터 삶의 터전을 이루어 인간사회가 형성 유지돼 왔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느끼게 한 것은 나에겐 유익한 소득이었다.
물론 산악지대의 주민들은 상호간의 교류가 어려워 폐쇄적이고 고립적이다 보니 소규모의 정체를 난립시켰다. 고대이후 최근까지의 이 지역의 역사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더우기 따뜻한 기후는 산속에서의 생활조차 큰 불편이 없도록 도와줌으로써 이 사회의 폐쇄성과 고립성을 더욱 조장시켜왔던 것 같다.
오늘날까지도 그 뿌리가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은 카라코룸 하이웨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끈질긴 자치권 요구에서도 알 수 있다. 파키스탄의 표준어인 우르두어 밖에 모르는 우리의안내자「칸」씨는 카라코룸 하이웨이의 여러곳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 답답해했다.
힌두어와 이란어가 섞여서 중세기 이후부터 쓰이게 된 이 우르두어 조차 아직까지는 이 지역의 깊은 산속 주민들의 그 폐쇄성을 완전히 깨지는 못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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