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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이정재를 울린, 실존 영웅의 장렬한 최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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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 장학수의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 임병래 중위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았을 뿐 아니라, 풍전등화 같은 운명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해낸 세계사적 사건이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이재한 감독)은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적진에 침투해 북한군의 동향과 무기·병력 배치 현황을 파악하는 등 목숨을 건 첩보활동을 벌인 '숨겨진' 영웅들에 대한 얘기다.

영화에서 인천지역에 잠입한 해군특수부대원들의 리더 장학수 역은 배우 이정재가 맡았다. 장학수는 실존 인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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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해군첩보부대 리더 장학수 역을 맡은 이정재.

인천상륙작전 직전 인천에 잠입해, 첩보수집 활동을 성공적으로 펼친 해군 중위 임병래가 그 주인공이다. 임병래 중위는 평안남도 용강출신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50년 4월 소위로 임관했다. 해군정보국 창설요원인 그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영흥도 첩보전', 일명 X-RAY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가 포함된 해군정보국 첩보대는 인천 앞바다에 있는 영흥도를 거점으로 인천에 잠입해 인천 해안포대의 위치, 북한군 병력배치 상황, 주둔 병력의 규모와 해안방어태세 등을 파악한 뒤, 이를 맥아더 장군 측에 넘겨줘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기반을 닦았다.

상륙작전이 임박해 영흥도 첩보기지는 철수 명령을 받았지만, 북한군 1개 대대가 영흥도를 기습하면서 전투가 벌어졌다. 영흥도에 있던 임 중위를 비롯, 해군 첩보대원 9명과 해군 의용대원 30여 명은 적군에 맞서 싸웠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적에게 포위될 위기에 처하자 임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다른 대원들이 보트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돕다가 결국 탈출에 실패한 채 적에게 포위됐다. 포로가 될 경우 인천상륙작전이 탄로날 거라 판단했던 그들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친 뒤 총으로 자결했다.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의 일이었다. 정부는 1954년 이들에게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으며, 미국은 1953년 7월 은성훈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해군은 둘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도탄 고속함 10번함(임병래함)과 11번함(홍시욱함) 함명으로 제정했다.

인천상륙작전은 이들의 희생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었을 터. 기밀을 지키기 위해 자결을 선택한 이들의 최후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실제로 배우 이정재는 임병래 중위의 장렬한 최후를 어떻게든 영화 속에 반영해보려 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적진에 침투, 요인암살 작전을 펼치다 독일군에 포위된 레지스탕스 대원 두 명이 함께 자결하는 내용의 영화 '새벽의 7인'도 다시 봤다. 임병래 중위의 최후와 비슷한 결말을 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실화를 영화 속에 넣다간 극화된 스토리의 틀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제작진의 판단 때문에 이정재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는 "가슴 뭉클했던 임병래 중위의 마지막 순간을 영화에 넣으려 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임병래 중위의 유족들은 '인천상륙작전' 시사회에 참석, 이정재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감사하다"는 유족들의 말에 이정재는 "너무 마음이 짠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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